정의
해방 이후 국가무형유산 「평택농악(상쇠)」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50년대 이승만 대통령 시절, 대통령의 생일을 기념해 열리는 농악경연대회에 농악패를 구성하여 ‘평택농악’ 이라는 이름으로 대회에 참가하였는데, 이것이 평택농악의 시초였다. 이후 절걸립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해체되었고, 1980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 경기도 대표로 참가하여 평택농악으로 대통령상을 받게 되고, 이를 계기로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다.
현재 평택농악보존회(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평궁리)는 전통적인 두레 농악패로서, 1월에 지신밟기를 하고 농사일이 시작되면 두레풍물을 치면서 마을사람들과 함께 생활했다. 평택농악은 전통적인 웃다리농악의 가락과 같은 판제를 지니고 있다.
한편 최은창의 생전 구술에 의하면, 그가 선호한 꽹과리 소리는 땡땡거리는 것이 아니라 여운이 길며 자각자각하는 소리였다. 사물놀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숫쇠와 암쇠의 구분이 지금과 같은 뚜렷한 음고의 차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작품
참고문헌
- 『중요무형문화재 자료』(문화재청)
- 「꽹과리 음향 선호도 조사 보고서」(김경희, 국립국악원,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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