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농선

  • 예술·체육
  • 인물
해방 이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이칭
  • 이칭한귀례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2002년
  • 성별여성
  • 출생 연도1934년
  • 출생지일본 동경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현경채
  • 최종수정 2024년 07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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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개설

일본 동경 출생. 가야금의 명인 한성기(韓成基, 1899∼1950)의 무남독녀로, 일본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목포에서 자랐다. 14살에 판소리에 입문해 강장원(姜章沅) · 박녹주(朴綠珠) · 박동진(朴東鎭) 명창에게 사사했으며, 1950년 여류명창 박초월(朴初月)에게 「흥보가」와 「수궁가」를 이어받았고, 1952년에는 박동진 명창으로부터 「춘향가」를, 1953년에는 박녹주에게서 「흥보가」를 전수받았다.

한편, 부친인 한성기 명인에게서 18세까지 가야금산조, 병창, 가야금풍류 등을 학습하여 송만갑(宋萬甲), 김정문(金正文), 박녹주, 한농선으로 이어지는 동편제 판소리의 정통을 잇는 명창으로 일컬어진다.

2002년에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판소리(흥보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54년 국극사에 입단하여 기예를 닦아오다가, 1957년 김연수(金演洙) 명창을 사사하여 「수궁가」와 「심청가」를 연마하였다. 1958년 한때 임춘앵(林春鶯) 여성국악동지사에 참여하여 단역을 맡아 연기도 했다.

1965년 박녹주를 따라 절로 들어가서 백일공부를 마친 다음, 본격적인 판소리 여류 명창 후보로 지목되면서 스승 박녹주의 창제와 더늠을 이어받은 명창으로 손꼽혔다.

중앙대학교,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등에서 판소리를 가르쳤으며, 영화 「홍살문」, 「한」 등에도 출연한 바 있다.

작품

「장부한」(콜럼비아 리갈레이블 유성기 음반), 「흥보전」(콜럼비아 리갈레이블), 「춘향전」(콜럼비아 리갈레이블), 「흥보가 1」(삼성뮤직, CD 1매, 1997) 「흥보가 2」(삼성뮤직, CD 1매, 1997), 「흥보가」(이멕스폰, CD 2매, 1997) 등이 있다.

참고문헌

  • - 『중요무형문화재 자료』(문화재청)

  • - 『판소리 이백년사』(박황, 사사연, 1997)

  • - 「흥보가」 음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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