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 학자 윤증(尹拯, 1629~1714)의 초상화 일괄.
개설
내용
초상화와 함께 전하는 『영당기적』은 윤증 초상의 제작과 관련된 기록을 담은 필사본으로, 1711년(숙종 37) 변량(卞良)이 윤증의 초상을 처음으로 그렸던 사례부터 1744년(영조 20) 장경주, 1788년(정조 12) 이명기, 1885년(고종 22) 이한철(李漢喆)이 모사할 때까지 4차례의 제작 사례를 기록하였다. 여기에는 제작 일정 및 제작된 초상의 수, 구본 및 신본의 봉안과정 등을 상세히 담고 있다.『영당기적』의 내용에 따르면 구본이 낡아 세초하여 담장 밖에 묻었다는 내용과 초상화 모사 비용을 마련하는 데 문중과 사림이 대거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영당기적』의 내용에 따르면 구본이 낡아 세초하여 담장 밖에 묻었다는 내용과 초상화 모사 비용을 마련하는 데 문중과 사림이 대거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섯 점의 초상화 가운데 석 점은《영당기적》에 의하면 영조 20년(1744) 장경주가 그린 측면좌상, 정조 12년(1788)에 이명기가 그린 측면좌상 두 점이 있으며, 1919년 채용신蔡臣이 그린 것으로 보이는 정면좌상이 있고, 1935년 누군가가 모사한 정면좌상이 전한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초상화연구』(조선미, 열화당, 1983)
-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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