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방 초상 ( )

이시방 초상
이시방 초상
회화
작품
문화재
조선 중기 공신 이시방(李時昉, 1594~1660)의 초상화.
이칭
이칭
이시방, 공신도상, 정사공신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보물(2006년 12월 29일 지정)
소재지
대전광역시 유성구 도안대로 398 (상대동, 대전시립박물관)
정의
조선 중기 공신 이시방(李時昉, 1594~1660)의 초상화.
개설

이시방 초상화는 모두 6점인데, 이시방의 후손들이 세거하던 충청남도 홍성의 사당에 주로 봉안해오던 것들로, 1점이 2006년 12월 29일 보물로 지정되어, 현재 대전역사박물관에 위탁되었다.

이시방(李時昉)은 본관 연안, 자는 계명(季明),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의 둘째 아들이며 이시백(李時白)의 동생이다. 인조반정을 주도한 아버지를 따라 유생으로 거사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녹훈되고 연성군(延城君) 서산군수·공조참판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군사와 군량을 모으는 데 공을 세웠다.

내용

1623년의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에 녹훈되던 30대 초상 석 점 가운데, 가장 큰 흑단령포본은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서 17세기 초반의 전형적인 공신도상(功臣圖像) 형식과 화법을 보여준다. 이 초상화는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에 녹훈될 때 그려진 30세 무렵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정사공신(靖社功臣) 교서가 이 초상화와 함께 전해지고 있어 이를 뒷받침해준다.

화면 크기는 세로 169.3㎝, 가로 93㎝이며, 전체 크기는 세로 224㎝, 가로 106.3㎝이다. 이와 도상이 같은 반신소상 1점은 훗날 연평부원군 이귀의 사우가 있는 충청남도 공주의 성봉서원(盛峰書院)에 이시방상을 모시기 위해서 이 공신상의 일부를 다소 거칠고 조악하게 모사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1점의 유지초본(油紙草本)은 이 흉상을 그릴 때 전신상에서 떼어낸 초본으로 여겨진다. 또 다른 종류의 영정 3점은 얼굴 모습이 거의 동일한 노년상인데, 두 점은 종이에 그린 흉상(胸像) 초본이고, 나머지 1본은 이 초본을 토대로 하여 비단에 그린 정본(正本)의 반신상이다.

특징

이시방 초상은 문관 2품이 착용하는 운안흉배(雲雁胸背)와 학정금대(鶴頂帶)를 착용하고 있는데, 이시방은 유생 신분으로서 정사공신 2등에 녹훈되어 품계가 겨우 종5품의 봉직랑[奉直]에 불과했다. 인조 2년(1624) 6월에야 연성군에 봉해져 2품에 올랐으며, 인조 3년(1625) 4월 18일에 융정전(隆政殿)에서 회맹연(會盟宴)이 열려 훈신들에게 공신교서를 반사(頒賜)할 때 금주(錦洲) 박정(朴炡)이 찬(撰)한 정사공신 책훈교서(策勳敎書)를 하사받았다. 정사공신상은 최소한 이시방이 2품에 오른 인조 2년 6월 이후에 그려져 공신교서가 반사된 인조 3년 4월 이후에 완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초상화는 정사공신 2등에 녹훈되었던 「신경유(申景裕) 초상」과 도상과 화법까지 거의 유사하여 전형적인 정사공신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모(紗帽)의 형태와 교의자(交椅子)의 투시법이 새롭게 변화된 모습이다. 즉 호성공신상 에서는 사모의 모정(帽頂)이 높고 양각(兩脚)이 약간 가늘고 길며 상하 모정을 농담(濃淡) 차이가 없이 흑색 안료로 칠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시방 초상은 사모의 모정이 매우 낮고 둥글다. 양각도 매우 짧고 폭이 넓고 둥근 느낌이며, 상하 모정의 농담 대조를 보인다. 그리고 왼쪽 팔과 등 뒤로 교의자의 등받이 부분을 묘사해 투시법이 좀 더 합리적으로 구사함으로써, 앉은 공간이 시각적으로 안정감 있게 보인다.

이시방 화상에는 천연두 자국이 보이며, 콧등과 뺨에 회갈색 담채(淡彩)로 농담의 변화를 주었다. 왼쪽 이마에는 그믐달 모양의 생채기 자국이 묘사되어 사실적인 느낌을 주도록 의도한 듯하다.

이 초상은 좌안7분면에 공수자세이며, 오사모의 모정(冒頂) 길이가 낮은 점, 단령의 오른쪽으로 첩리와 내공이 일률적으로 내려진 점, 중국식 채전이 화면상 높이 배치된 점, 의자의 양쪽 끝이 바깥으로 뻗친 점 등이 특징으로 17세기 공신도상의 여러 형식 중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17세기 공신도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른 작품으로, 시대 양식을 판가름하는 데 기준이 되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한국 초상화 연구』(조선미, 열화당, 1983)
문화재청(www.cha.go.kr)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황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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