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 공신 이시방(李時昉, 1594~1660)의 초상화.
개설
이시방(李時昉)은 본관 연안, 자는 계명(季明),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의 둘째 아들이며 이시백(李時白)의 동생이다. 인조반정을 주도한 아버지를 따라 유생으로 거사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녹훈되고 연성군(延城君) 서산군수·공조참판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군사와 군량을 모으는 데 공을 세웠다.
내용
화면 크기는 세로 169.3㎝, 가로 93㎝이며, 전체 크기는 세로 224㎝, 가로 106.3㎝이다. 이와 도상이 같은 반신소상 1점은 훗날 연평부원군 이귀의 사우가 있는 충청남도 공주의 성봉서원(盛峰書院)에 이시방상을 모시기 위해서 이 공신상의 일부를 다소 거칠고 조악하게 모사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1점의 유지초본(油紙草本)은 이 흉상을 그릴 때 전신상에서 떼어낸 초본으로 여겨진다. 또 다른 종류의 영정 3점은 얼굴 모습이 거의 동일한 노년상인데, 두 점은 종이에 그린 흉상(胸像) 초본이고, 나머지 1본은 이 초본을 토대로 하여 비단에 그린 정본(正本)의 반신상이다.
특징
이 초상화는 정사공신 2등에 녹훈되었던 「신경유(申景裕) 초상」과 도상과 화법까지 거의 유사하여 전형적인 정사공신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모(紗帽)의 형태와 교의자(交椅子)의 투시법이 새롭게 변화된 모습이다. 즉 호성공신상 에서는 사모의 모정(帽頂)이 높고 양각(兩脚)이 약간 가늘고 길며 상하 모정을 농담(濃淡) 차이가 없이 흑색 안료로 칠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시방 초상은 사모의 모정이 매우 낮고 둥글다. 양각도 매우 짧고 폭이 넓고 둥근 느낌이며, 상하 모정의 농담 대조를 보인다. 그리고 왼쪽 팔과 등 뒤로 교의자의 등받이 부분을 묘사해 투시법이 좀 더 합리적으로 구사함으로써, 앉은 공간이 시각적으로 안정감 있게 보인다.
이시방 화상에는 천연두 자국이 보이며, 콧등과 뺨에 회갈색 담채(淡彩)로 농담의 변화를 주었다. 왼쪽 이마에는 그믐달 모양의 생채기 자국이 묘사되어 사실적인 느낌을 주도록 의도한 듯하다.
이 초상은 좌안7분면에 공수자세이며, 오사모의 모정(冒頂) 길이가 낮은 점, 단령의 오른쪽으로 첩리와 내공이 일률적으로 내려진 점, 중국식 채전이 화면상 높이 배치된 점, 의자의 양쪽 끝이 바깥으로 뻗친 점 등이 특징으로 17세기 공신도상의 여러 형식 중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 초상화 연구』(조선미, 열화당, 1983)
-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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