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 문신 유언호(兪彦鎬, 1730~1796)의 초상화.
개설
이 초상화는 상단의 왼편에 작은 글씨로 “숭정삼정미 화관 이명기 사(崇禎三丁未 畵官 李命基 寫)”라고 쓴 글이 있어 1787년(정조 11)에 도화서 화원 이명기(李命基)가 그린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정조는 이 그림을 보고 화면 윗부분에 어평(御評)을 남겼는데, “우리가 서로 만나는 것은 먼저 꿈속에서 점지되었지[相見于离, 先卜於夢], 팽팽한 활시위 하나 다듬은 가죽 하나로 내게 최선과 차선을 가르쳐주었네[一弦一韋, 示此伯仲]”라고 하여 유언호의 노련하고 강직한 성품을 활과 가죽에 비유하여 세손 시절 곁에서 자신을 성심껏 보필한 노신(老臣)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었다.
내용
화면 속의 유언호는 오사모에 단령포를 입고 오른손으로 왼쪽 옷자락 끝을 살짝 잡고 서 있는 모습이다. 조선시대 초상화 중 이처럼 관복 정장의 전면입상 초상화는 매우 드문 사례에 속한다. 그러나 정면입상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1796년(정조 20) 이명기가 그린 또 다른 작품인 「서직수 초상」[김홍도와 합작]과 구도면에서 상통된 점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초상화는 이명기의 다른 초상화와 마찬가지로 얼굴 안면에는 피부가 얽은 자국과 육리문(肉理紋)이 뚜렷하게 표현되었고 의복의 겹쳐진 부분마다 음영이 더해져 전체적으로 입체감이 두드러진다. 바닥에 깔린 돗자리 위에 가지런히 벌린 두 발 사이에도 그림자가 은은하게 표현되어 화면에 공간감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그림 아래 부분에 “용체장활 시원신감일반(容體長闊 視元身減一半)”, 즉 “얼굴과 신장, 폭은 원래 신장과 비교할 때 절반으로 줄인 것이다.”라고 쓰여 있어 유언호의 실제 신장 크기를 화면의 비율에 맞춰 축적으로 계산하여 그렸음을 알 수 있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옛 화가들은 우리 얼굴을 어떻게 그렸나』(이태호, 생각의 나무, 2008)
- 『규장각명품도록』(서울대학교규장각, 200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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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고려 말기에서 조선 시대에 걸쳐 벼슬아치들이 관복을 입을 때에 쓰던 모자. 검은 사(紗)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흔히 전통 혼례식에서 신랑이 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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