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서양 화법을 수용하여 입체적인 초상화법을 구사한 화가.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이명기는 18세기 후반 중국을 통해 유입된 서양 화풍을 조선의 초상화법에 수용하였으며, 이후의 초상화법을 결정할 만큼 큰 영향을 남겼다. 그의 초상화에서는 필선과 선염(渲染)에 의한 전통적인 묘사가 현저하게 줄었으며, 음영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입체적이고 생동감 도는 인물 표현을 구사하였다. 이명기의 작품으로 30여 점에 이르는 초상화가 전하고 있는데, 「강세황초상」, 「채제공초상(蔡濟恭肖像)」, 「서직수초상(徐直修肖像)」 등 많은 수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명기의 작품 중에는 채제공, 유언호(兪彦鎬), 오재순(吳載純) 등 정조 대 명재상의 초상화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당시 고위 관료들의 초상화를 전담할 정도로 이명기의 화법이 궁중과 사대부 사이에서 높은 명성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 『성도일록(成都日錄)』
- 『성원록(姓源錄)』
단행본
- 강관식, 『조선후기 궁중화원 연구』(돌베개, 2001)
논문
- 장인석, 「화산관 이명기 회화에 대한 연구」(명지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07)
- 박정혜, 「의궤를 통해서 본 조선시대의 화원」(『미술사연구』 9, 미술사연구회, 1995)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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