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10세기경부터 청자와 백자로 주자, 즉 주전자가 제작되었다. 그 용도는 술이나 차 등을 따르는 용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청자와 같이 주자와 승반이 한 세트로 된 경우, 승반은 주자에 담겨 있는 물이나 술, 차 등의 온도를 유지시키기 위한 기능을 가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는 물론 당시 동아시아에서는 주자와 승반이 세트로 함께 제작된 예가 남아 있으며, 도자기 외에 청동이나 은제로 만들어진 사례도 있다.
이 주자의 몸체는 거의 구형에 가까워 풍만하며 대칭으로 주구(注口)와 둥그스름한 손잡이를 붙여 조화롭다. 몸통은 아래쪽에 약간 더 무게중심이 있어 안정감을 준다. 위쪽에는 연봉형 꼭지를 붙인 뚜껑을 얹었는데 뚜껑의 꼭지와 손잡이의 고리를 연결하여 서로 고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동체 양쪽 전면에는 다른 장식문양 없이 각각 버드나무와 꽃무늬를 꽉차게 상감하였다. 버드나무는 간결한 검은 선으로 경쾌하게 그렸으나 반대편의 꽃은 2단으로 활짝핀 꽃과 그 위에 봉오리를 그렸다. 버드나무가 간단한 검정의 선상감으로 그려진 데 반해 꽃은 흑백의 면상감으로 화려하다.
주자의 아래에는 승반을 받쳤다. 승반의 형태는 구연이 넓고 벌어진 발(鉢)에 가까우나 주자를 담을 수 있도록 굽이 안정감 있으며 벌어졌다. 승반의 바닥은 평평하며 운두가 깊다. 유색은 고르게 입혀져 비색을 띠면 전면에 잔 빙렬이 있다.
현전하는 유물 가운데 이 주자 및 승반과 비슷한 것으로는 강화도 출토 청자편에서 볼 수 있다. 강화도에 위치한 석릉(碩陵)은 고려 제21대 희종(熙宗)의 능으로, 1992년 사적으로 지정․관리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잔탁, 완 대접, 접시 등 도자기가 동반 출토되었다. 이 중 잔탁 1점과 일부 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석실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청자 파편 가운데는 흑백상감기법의 모란문 매병 조각편이 발견되었다. 꽃과 잎을 면상감으로 처리한 점과 무늬의 배열 등에서 이 주자의 문양 징식과 유사하다. 희종은 고종 24년(1237) 향년 57세로 사망하였는데, 당시 강화도 천도 시기였으므로 강화의 진강산에 매장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석릉(碩陵)축조 년대를 1237년으로 본다면 함께 부장된 이들 청자의 제작시기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셈이다. 또 태안 마도해역에서 인양된 유물가운데 표주박 모양의 주자에 승반이 함께 출토된 상감청자가 있었다. 기형은 다르지만 역시 동체에 흑백상감의 화문이 있고, 1208년의 출항을 알려주는 죽간이 함께 발견되어 구체적 시기를 알려 준다.
둥글고 양감있는 기형과 동체에 부수적인 장식 없이 활달하고 시원하게 자리잡은 문양, 부드러운 유색 등 조형적 조화와 양호한 번조 상태는 현전하는 주자와 승반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