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적은 벼루에 먹을 갈 때 따를 물을 담는 용기로서 수적(水滴)이라고도 한다. 고려 시대에는 청자로 만든 상형의 연적들이 전한다. 상형청자는 인물이나 동물 및 사물의 형상을 본 떠 만든 청자를 말한다. 10세기경 중부지방의 초기청자 가마터에서 상형의 동물장식이 부착된 기물을 제작하였지만 그 경우는 제기나 특수용 의례기를 장식하기 위한 용도였다. 본격적으로 상형의 용기나 문구류, 향로 등이 제작되는 것은 12세기 이후이며 13세기까지 가장 발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에서는 북송대 하남성 여요(汝窯), 섬서성 요주요(耀州窯) 등에서 고려와 비슷한 상형기물을 제작하였다.
청자 기린 연적은 신화적 모티프인 기린을 형상화하여 만들었다. 말과 비슷한 형상이지만 뿔이 하나 있고 동체에는 날개가 있다. 정수리에 외뿔이 달린 형태로 기린은 다리를 구부리고 웅크려 앉아 마치 쉬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머리는 몸의 반대 방향으로 돌려 전체적으로 균형을 잡아주었다. 등쪽으로 물을 넣고 입으로 물이 나오는 구조를 가졌는데, 물을 넣는 수구(水口)는 짧은 원통형이다. 그 둘레에는 끝이 뾰족한 연잎을 붙여 마치 수구가 꽃 속에서 뻗어 나온 것처럼 묘사하였다. 기린은 입에 두 가닥으로 꼬인 연잎 줄기를 물고 있는데, 그 줄기 끝에는 연 봉오리가 달려 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연꽃과 줄기, 봉오리가 기린의 등쪽에 붙어 있는 형상이다. 머리 뒤쪽으로는 곱슬곱슬한 갈기털을, 엉덩이 부위에는 위로 치켜든 꼬리털을 묘사하였다. 눈에는 철화안료로 작고 검은 점을 찍어 눈동자를 장식하였다. 그 외 연봉오리와 꼬리털, 연잎의 가장자리 등에는 백토와 철화안료를 이용한 철백화(鐵白畫 또는 堆花)기법으로 흰색과 검은색의 작은 점을 찍어 장식하였다. 연적은 굽바닥까지 완전히 시유한 후 3곳에 규석을 받쳐 구웠다. 유면이 고르고 유색도 차분하며 비색이 아름답다.
동물이나 인물형의 연적같은 상형기에 눈 부분을 철사(鐵砂)로 표시하면 청자기린 연적처럼 구운 후 검은색으로 나타나 눈동자를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다. 간송미술관 소장 청자모자원숭이모양연적(국보, 1992년 지정)에도 어미 원숭이의 눈과 코, 새끼 원숭이의 눈에 각각 철사(鐵砂) 안료를 발라 검게 나타내었고, 청자기린형뚜껑향로(국보, 1962년 지정. 간송미술관 소장)의 기린에도 눈동자를 검게 표현한 사례가 있다.
이와 유사한 연적은 아직까지 전하지 않는다. 다만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청자기린형뚜껑향로의 뚜껑 부분에 기린장식이 상형되어 비교할 수 있다. 이 향로 역시 무릎을 구부리고 편히 앉아 뒤를 돌아다보는 자세로 표현되어 기린(麒麟)이 편히 쉬고 있는 모습을 연상케한다. 일반적으로 상형의 비색 청자들에 대한 편년은 거의 12세기로 추정되어왔다. 물론 유색과 유려한 형태의 조형미 등으로 보면 12세기가 절정일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최근 중국 내몽골 집녕로(集寧路) 발굴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청자구룡형연적(靑瓷龜龍形硯滴)의 사례를 통해 13세기 후반까지도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