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려 시대 초기부터 주자가 청자와 백자로 제작되었다.그 용도는 술이나 차 등을 따르는 용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시대 주자 가운데는 금속기인 청동기나 은기를 청자로 번안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식물의 형상이나 부분을 채용하여 장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표주박 모양은 주자나 병 등의 몸체로 빈번하게 상형되었다.
표주박을 상형하여 동체를 만들고 그 면에 세로로 참외의 골을 연상케하는 음각선을 여덟 곳에 그었다. 그리고 음각선 주위를 얕게 깎아 전체를 입체형으로 나타냈다. 물을 따르는 주구(注口) 부위는 넓은 박 잎을 둥글려 말아 붙인 것처럼 장식했고, 손잡이는 박 줄기를 두 가닥으로 꼬아 붙였는데 잘록한 허리 부분에서 둥글려 올려 둥근 선을 만들고 길게 동체 아래로 이어 붙였다. 주구는 손잡이와 대칭으로 동체 아래부터 늘씬하게 올라서 가슴까지 올라와 벌어졌다. 뚜껑도 잎파리를 엎어 놓은 형태처럼 만들었으며 동체와 마찬가지로 음각선을 이용하여 입체감을 냈다. 손잡이 정상부에는 더 가는 줄기를 꼬아 만든 고리가 있어서 뚜껑의 윗면에 붙은 고리와 연결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밑바닥은 굽을 별도로 깎거나 붙이지 않고 동체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동체, 주구, 손잡이 등이 서로 적절한 비례와 균형미를 지녀 안정감을 주며, 문양장식이 없어 유려한 형태와 유색이 두드러지면서 세련미를 더해준다.
주자 표면 전체에 굵은 빙렬들이 있으나 전반적으로 불투명하면서 정갈한 옅은 녹색을 띤다. 다만 굽 바닥부분에는 유약이 덜 입혀진 부분이 드러나 있다. 한편, 고려시대 주자들 가운데는 굽이 별도로 달린 경우와 이 주자처럼 굽이 따로 없이 둥그스름하게 만들어진 사례들도 있는데, 이 유물처럼 굽이 없는 경우 아래쪽에 승반(承盤)을 받치기 위해 굽을 제작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12세기의 표형주자들 가운데 뚜껑과 몸체가 온전히 남아 있고 동체를 이처럼 참과형(瓜形)으로 깎아 만든 예는 흔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