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양각의 청자 연판문 접시.
개설
내용
유약은 굽 부분까지 모두 입히고 굽 안 바닥 세 곳에 규석받침을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다. 굽 접지면 일부에는 규석받침용 도침이 붙었던 흔적도 남아 있다.
이 유물처럼 연꽃잎의 가장자리가 뾰족한 형태의 연판문 장식은 고려 전기 시흥 방산동 요지와 여주 중암리 요지의 잔탁장식에 나타나지만, 접시나 발 등의 외면을 장식하는 사례는 일반적으로 12세기 이후 강진 일대에서 유행하여 전국으로 확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강진이나 부안 이외지역에서는 이 유물처럼 입체형으로 깎은 연판문 장식은 흔치 않으며 음각선으로 그린 경우가 더 많다. 연판문 장식은 동시기 북송, 금, 남송, 원대까지 중국남북방의 청자와 백자요지에서 크게 유행하였으며, 특히 입체형의 연판장식은 금속공예품에 사용되었던 타출(打出)기법 연판문과도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고려시대 연판문자기 연구」(정다우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논문, 2010)
- 「고려중기 압출양각 청자의 성격」(장남원,『미술사학연구』242·243, 한국미술사학회, 2004)
- 「‘강진유형’의 공유 현상을 통해 본 11∼12세기 청자의 성격」(장남원,『미술사학연구』231, 한국미술사학회,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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