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씨삼형제초상」은 원래 평양 조씨 승지공파 문중에 내려오던 것으로 조계, 조두, 조강 삼형제를 하나의 화폭에 그린 작품이다. 맏형 조계는 종2품 외관직 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를 역임하였고, 둘째 조두는 정조7년 무과 급제 후 3품 선천부사(宣川府使)를, 막내 조강은 삭주부사(削州府使)를 거쳐 종2품 광주중군(廣州中軍)을 지냈다.
「조씨삼형제초상」은 얼굴을 살짝 오른 편으로 돌린 좌안8분면(左顔八分面)의 복부까지 내려오는 반신상으로, 맏형 조계를 중심으로, 하단 좌우에 둘째 조두와 셋째 조강이 그려진 삼각형 구도를 취하고 있다. 조선시대 초상화가 후손이나 참배인들을 위한 엄중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화면 안에 한 사람 만을 그려 넣는데 반하여, 이 초상화는 가족 초상화라는 특이한 화면구성을 보인다. 세 사람은 모두 오사모에 담홍색 시복(時服)을 입고 있는데, 맏형은 종이품 벼슬아치가 착용하는 학정금대(鶴頂金帶: 가장자리는 황금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 붉은 장식물이 붙어 있음)를, 두 아우는 각대를 두르고 있다. 시복이란 입시할 때나 공무를 볼 때 관원들이 입던 흉배가 없는 담홍색 단령으로, 시복에는 사모와 대 그리고 목화(木靴)를 착용하였다.
안면처리는 18세기 말 19세기 초엽의 전형적 양식에 그대로 의거하고 있다. 적갈색을 주조로 하여, 안면의 요철(凸凹)를 살리기 위해 도드라진 부분에는 붓질을 덜하여 엷게 칠하고, 골과 골의 연접 부위 등 움푹 들어간 부분에는 붓질을 거듭하여 짙게 칠하여 명암을 나타내는 필법을 구사하였다. 특히 눈 밑의 늘어진 부분이나 코에서 입가로 흐르는 팔자주름. 그리고 뺨에서 턱으로 내려오는 부위나 턱밑에는 어두움을 강하게 나타내었다. 눈은 적갈색 선으로 눈꺼풀을 규정한 뒤, 눈 안쪽과 눈꼬리 안쪽으로 붉은 기운을 삽입하여 생기를 부여하였다. 단령의 깃은 깊게 파여지고, 시복의 외곽선과 주름은 회색 담묵선으로 규정하였으며, 굴곡을 지시하기 위해 주름 선 주변을 짙은 분홍색으로 선염처리하였다. 이들 삼형제는 18세기 말엽의 전형적 필법에 의해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그려졌지만, 수염 만은 각자의 생태를 제대로 살려 개성적인 특징이 드러나 있다.
18세기 말 19세기 초엽의 다소 도식화가 진행된 필법에 의해 그려졌지만, 마치 근래의 기념사진 같은 구도를 보여준 집단 초상화라는 점에서 독보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