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의 본관은 청풍(淸風)이며 자는 사직(士直), 호는 검재(儉齋)이다. 1699년(숙종25) 문과에 급제하고, 1715년(숙종41) 황해도 관찰사에 오른 뒤, 벼슬이 이조참판과 대제학에 이르렀다.
「김유초상」은 화면 오른 쪽 상단에 ‘검재선생화상(儉齋先生畵像)’이라 하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육십이세때 그리다(六十二歲時寫)’라고 쓰여 있다. 따라서 이 초상화는 1716년(숙종42)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김유 초상」은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 전신교의좌상으로, 도상이나 화법이 18세기 초 숙종대 말경부터 영조대 초반경에 유행했던 양식을 잘 보여준다. 특히 발받침대와 교의자 받침대도 오른쪽을 향한 동일한 투시법으로 통일되어 있는데 반해 뒤쪽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역원근법을 보인다. 18세기 초반경의 초상화에 보이는 투시도법이기도 하다.
오사모에 단령을 입고 두 손을 마주잡고 교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좌상이다. 얼굴을 오른 쪽으로 약 20도 가량 돌려 좌안8분면(左顔八分面)을 취하고 있다. 짙은 녹색 단령에 높은 사모와 밑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소매 폭은 당대의 복식을 보여준다. 또한 당상관을 표시하는 쌍학문양의 흉배와 정2품을 지시하는 삽금대(鈒金帶 : 황금 띠돈을 단 허리띠)는 이 초상화가 그려질 당시 김유의 품계와 부합된다. 1715년(숙종41) 당시 김유는 종2품인 황해도관찰사에 올랐기 때문이다.
안면은 외곽선 및 이목구비를 짙은 갈색 선으로 규정하고, 눈썹 위에 약간 튀어나온 부분은 붓질을 덜하여 밝음을 강조하였으며, 주름살은 미묘하게 농담의 차이를 주어 표현하였다. 특히 미간사이의 세로 주름과 이마 중앙의 갈매기 날개 같은 주름살, 그리고 눈썹과 궤를 같이하는 주름살의 형용은 화가가 얼마나 정세하게 표현하였나를 잘 보여준다.
호피(虎皮)깔린 의자, 발받침대 위에 ‘八’자로 벌린 흑피화, 그리고 뒤로 갈수록 넓어지는 족좌대의 형용이나 목리문의 정치한 묘사 등은 표현형식과 기법면에서 18세기 초반 관복본 사대부 초상화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