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653년작. 모시 바탕에 채색. 세로 8.35m, 가로 5.79m. 석가모니불이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도 괘불도이다. 『상산지(常山誌)』에 의하면 원래 진천읍 상주리백련암에 있던 것인데 백련암이 폐사되면서 영수사로 이전했다고 한다.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18보살, 16나한, 제석 · 범천, 사천왕, 팔부중, 성중들이 화면 가득 표현되어 있다. 화면의 향우측 하단에는 한 무리의 주악천중을 묘사하고 향좌측 하단에는 우바이, 우바새 등 청문중을 배치하는 등 『묘법연화경』 서품에 의거하여 많은 권속을 묘사함으로서 영산회상을 장엄하고 실감나게 묘사하였다. 화폭은 괘불로서는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인물의 크기를 작게 함으로서 화면 가득 많은 권속들을 표현하면서도 복잡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 불화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석가모니의 대좌 앞에는 등을 보이고 앉아 석가모니를 향해 질문하는 사리불을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영산회상도에 청법자가 등장하는 것은 조선 초기에 간행된 묘법연화경 경전변상도에서 볼 수 있으며, 영수사 괘불도를 비롯하여 보살사 괘불도(1649년), 청룡사 괘불도(1658년), 칠장사 괘불도(1710년) 등 비교적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채색은 밝고 투명하게 설채되었으며 유려한 필치와 다양하면서도 능숙한 인물묘사는 이 괘불도를 조성한 명옥(明玉), 법능(法能) 등의 화승들의 필력이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양식적 특징은 같은 화승이 1658년에 제작한 청룡사 영산회괘불탱(보물, 1997년 지정)에서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어 17세기 괘불도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다.
하단의 시주질은 2개로 나누어져 있는데, 상단 화기는 세 전하의 축원을 기원하는 내용이 적혀 있으며, 하단화기는 많은 시주물품과 시주자명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황금(黃金), 주홍(朱紅), 이청(二靑), 대청(大靑), 정채(丁彩), 삼록(三錄), 홍사(紅絲), 호초(楜梢) 등의 채색명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안료 연구에 주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화기의 조성 연도가 ‘숭정(崇禎)’ 연간으로 썼다가 이후 ‘순치(順治)’ 연간으로 가필된 것이 발견되지만, 영수사 괘불의 조성 연간의 간지, 그리고 화승인 명옥, 법능 등이 1658년에 청룡사 영산회괘불탱(보물, 1997년 지정)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1653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분적으로 후보한 부분이 있고 화기에서도 가필된 부분이 보이기는 하지만, 17세기 영산회상도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