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바탕에 채색. 1764년작. 18세기 호남지역의 대표적인 화승 중의 하나인 색민(色旻)의 주도하에 20여 명의 화승이 제작한 괘불도이다.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화면 가득 크게 묘사하고 석가모니의 두광(頭光) 좌우로 아미타불과 관음보살을 작게 배치하였다. 석가여래는 오른손은 내리고 왼손은 가슴 앞으로 올려 손가락을 마주잡고 있으며 가슴 중앙에는 卍자가 묘사되었다. 방형의 얼굴에 비하여 이목구비는 작게 표현되었으며 나발의 머리에는 중간계주와 정상계주가 장식되었다. 법의는 통견식으로 입었는데 연화당초문과 구름문양이 아름답게 시문되어 있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각각 여의와 연꽃을 들고 시립하였는데 화려한 보관을 쓰고 영락으로 장식된 천의를 걸쳤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있는 구도와 다소 살찐 듯한 인물표현, 다양하면서도 화려한 문양 등은 색민이 스승인 의겸의 화풍을 충실하게 계승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이 괘불도의 도상적 특징은 내소사 괘불도(1700년)을 비롯하여 안정사 괘불도(1702년), 청곡사 괘불도(1722년), 운흥사 괘불도(1730년), 다보사 괘불도(1745년) 등 18세기 호남지역에서 성행한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에 근거한 도상을 간략화한 것으로 생각되며, 전체적인 도상의 배치나 문양표현에 있어 개암사 괘불도(1749년)를 기본으로 하였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그 사이에 다보여래와 아미타여래가 그려진 괘불도 형식은 천신(天信)이 그린 내소사 괘불도(1700년)를 시작으로 광흠(廣欽)이 그린 안정사 괘불도(1702년)로 이어졌으며, 의겸(義謙)에 의해 적극적으로 제작되었다. 대흥사 괘불도를 그린 색민은 의겸이 주도하는 불사에 참여하였고, 특히 의겸이 1745년에 제작한 다보사 괘불도와 1749년의 개암사 괘불도 제작 때 일원으로 참여했던 사실로 볼 때 자연스럽게 의겸의 화풍을 습득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흥사 괘불도는 의겸의 괘불 형식을 따르면서 일부 권속을 생략하였으며, 석가모니와 문수보살의 유난히 길게 늘어진 팔은 다소 불균형한 면을 보여준다.
보존상태도 뛰어나며, 의겸의 화풍을 계승한 색민의 대표작으로서 꼽을 만하다. 특히 화면 뒷면에는 가로로 길게 대흥사 각 전각과 산내 암자에 주석했던 모든 스님의 이름이 상세히 기록돼 있어 당시 대흥사의 사세와 승려들의 현황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