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석천룡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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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천은사 제석천룡도
구례 천은사 제석천룡도
회화
개념
신중도의 한 형식으로 제석천과 무장의 천룡팔부중을 한 폭에 함께 그린 불화.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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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신중도의 한 형식으로 제석천과 무장의 천룡팔부중을 한 폭에 함께 그린 불화. 불화.
개설

일월천자(日月天子), 보살, 천부중(天部衆)을 거느린 제석천과 위태천을 중심으로 사천왕, 팔부중 등 천룡팔부를 함께 배치한 형식이다. 제석천은 보관을 쓰고 소매가 넓은 옷을 입은 천신의 모습으로 일궁천자와 월궁천자, 보살, 주악천녀들과 함께 그려지며, 위태천은 새의 날개깃으로 장식한 화려한 투구를 머리에 쓰고 합장하여 보검을 받들거나 두 손으로 검을 짚고 선 모습으로 팔부중과 함께 표현된다.

내용

제석천룡도는 제석과 천부중 및 위태천과 팔부중의 위치에 따라 다시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제석을 비롯한 천부중이 화면의 윗 부분에 표현되고 위태천과 천룡팔부중이 아래 부분에 묘사되는 것으로, 화면의 중앙 위에는 제석천, 아래에는 위태천을 배치하고 좌우에 각각의 권속들을 배치한 형상이다. 따라서 화면은 제석과 위태천에 의해 상하로, 다시 각각의 권속에 의해 수평으로 구분되어 다소 단조로운 느낌을 준다. 청암사 신중도(1781년)를 비롯하여 직지사 신중도(1797년), 송광사 신중도(1823년), 선암사 신중도(1860년), 향림사 신중도(1874년) 등이 이에 속한다. 둘째는 제석과 그 권속이 향우측(또는 향좌측)에, 위태천과 권속들이 향좌측(또는 향우측)에 배열되는 형식이다. 이 경우에는 제석은 정면을 향하고 있고 위태천이 제석을 향해 합장을 하고 서 있는 것이 보통이나(보검이나 삼차극, 금강저를 들기도 함), 1792년 통도사 신중도처럼 제석천과 위태천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기도 하고, 1806년 김룡사 대성암 신중도, 1880년 대승사 금선암 신중도와 같이 두 존상 모두 정면을 향하여 앉아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 1887년 해인사 신중도 같이 제석과 위태천 모두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 것도 있다. 이 형식의 신중도는 각 권속들이 많이 표현되지 않고 일부만 묘사되어 비교적 간단한 구성을 보이는 것이 많으며, 현존하는 작품을 볼 때 경상도 지역에서 특히 성행했던 형식으로 생각된다 제석·천룡도에 표현되는 권속은 적게는 10구에서 많게는 20구 정도에 이른다. 때로는 제석천뿐 아니라 제석천과 범천이 상대적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여기에 마혜수라(大自在天, Mahesrava)가 함께 묘사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범천은 제석천과 함께 천신의 모습, 마혜수라는 3목 8비(三目八臂) 또는 8비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참고문헌

『찬란한 불교미술의 세계, 불화』(김정희, 돌베개, 2008)
「조선후기 신중탱화 도상의 연구」(이승희, 『미술사학연구』228·229, 한국미술사학회, 2001)
「조선시대 신중탱화의 연구Ⅱ」(김정희, 『한국의 불화(5)-해인사 본ㆍ말사 편(하)』, 성보문화재연구원, 1998)
「조선시대 신중탱화의 연구Ⅰ」(김정희, 『한국의 불화(4)-해인사 본ㆍ말사 편(상)』, 성보문화재연구원,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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