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보물, 2007년 지정)과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보물, 2008년 지정)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교적 크기가 큰 채색 지도로, 수준 높은 화법과 필치 등이 이 지도가 관찬 지도였음을 말해준다. 수정본 『성경지』에 그려진 만주 일대와 정상기(鄭尙驥) 이전의 서북지역 윤곽을 결합시켜 만든 지도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은 세로 139.0㎝, 가로 635.0㎝이며, 규장각 소장본은 세로 143.0㎝, 가로 203.0㎝이다.
1746년(영조 22) 청의 봉황성장(鳳凰城將)이 책문(柵門)을 남쪽으로 옮겨 경작지를 늘리려 하자, 조선이 청에 자문을 보내 이를 번복시킨 일이 있었다. 영조는 책문을 옮기는 것과 관련해 강희 연간(1662~1772)의 전례를 확인하기 위해 새로 수입된 수정본 『성경지』를 찾았다. 수정본 『성경지』의 내용을 들은 영조는 조선과 관련이 깊은 토문강(土門江), 성경(盛京), 영고탑(寧古塔) 등지의 지도를 자세히 그려 올리도록 했다. 「서북피아 양계만리 일람지도」는 이 시점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조선의 서북지방은 변지(邊地)와 내지(內地)를 가르는 산줄기가 선명하다. 만주 지역은 흑룡강에서 산해관(山海關)까지를 포괄하고 있으며, 성경(盛京) · 흥경(興京) · 오라(烏喇) · 영고탑 등 주요 도시들과 함께, 청나라가 설치한 유조변책(柳條邊柵)과 변문(邊門)이 선명하다. 만주 지역의 도로는 조선의 서북 지역과 연결되어 있다.
한 갈래는 의주에서부터 산해관을 경유해 북경쪽으로 향해 가는 사행로(使行路)이다. 다른 하나는 북관(北關) 개시(開市)가 열리는 함경도 회령과 경원에서 영고탑~선창(船廠)~성경에 이르는 길이다. 사행로에 관한 정보는 『성경지』나 「요계관방지도」보다 자세한 편이다. 이것은 이 길이 조선의 사행길로 직접 보고 듣게 된 지리 정보들이 비교적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대의 사행로 뿐만 아니라 우가장(牛家庄)을 경유하는 1665년(현종 6) 이전의 사행로도 기록되어 있다.
지도의 왼편 위쪽 여백에는 영고탑의 역사적 유래, 청의 건국 과정과 족속, 청의 요동 지역 군사 편제, 몽고에 대한 청의 두려움, 몽고의 영역과 48부의 명칭에 관한 내용들이 적혀 있다. 이는 청의 몰락과 영고탑 회귀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또한 대명 조공외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반면, 청을 주저 없이 ‘오랑캐’라고 부르는 내용도 있다.
이 지도는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분계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계 이전에 작성된 요계관방지도 유형과 다르다. 백두산에서 두 갈래의 물줄기가 흘러내리는데, 하나는 두만강의 본류이며, 다른 하나는 두만강 위쪽을 흐르다가 온성부(穩城府) 근처에서 두만강에 합류된다.즉 전자는 ‘토문강원(土門江源)’이며, 후자는 ‘분계강(分界江)’이다. 그 발원처 역시 ‘분계강원(分界江源)’으로 적혀 있다. 정계(定界) 후 설치한 목책에는 ‘토문강원’에서 ‘분계강원’까지 이어져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토문강을 두만강 상류로 보면서도, 분계강을 별도로 표시한 것이다.
백두산 주변의 여백에는 요계관방지도의 해당 부분과 유사한 인용문이 있는데, 백두산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두만강’이라 적고 있다.이는 『명일통지(明一統志)』에서 ‘아야고강(阿也苦江)’, 『성경통지(盛京統志)』에서 ‘토문강’, 「요계관방지도」에서 ‘토문강’이라고 한 물줄기를 적은 것이다. 지도의 물줄기 표현에서 토문강을 두만강의 상류로 보았던 것과 유사하다.
「요계관방지도」, 「서북계도」와 함께 조선 후기 관방지도를 대표하는 지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