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출신지는 미상이며 최씨무인정권(崔氏武人政權) 말엽 정7품 무관직인 별장(別將)의 지위에 있었다.
1258년(고종 45) 3월 26일(丙子) 대사성(大司成) 유경(柳璥)과 별장(別將) 김인준(金仁俊, 후에 金俊으로 改名)이 중심이 되어 최씨무인정권(崔氏武人政權)의 4대 집권자인 최의(崔竩)를 죽이고 왕정복고(王政復古)를 이룩하였다. 같은 해 6월 최씨무인정권 2대 집권자 최우(崔瑀)의 외손(外孫)인 장군 권수균(權守鈞)의 사위인 소경(少卿) 문황(文璜)이 최의(崔竩)의 원한을 복수하기 위해 우부승선(右副承宣) 김인준을 살해하려고 하였다. 이 거사(擧事)에 참여하였던 중부녹사(中部錄事) 유종식(柳宗植)이 별장 김인문(金仁問)을 포섭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김인문은 승락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연루될까 두려워하여 우별초(右別抄) 지유(持諭) 백영정(白永貞)을 통해 김인준에게 고변(告變)하게 하였다.
이로 인해 최씨무인정권의 인척(姻戚)이 무오정변(戊午政變)의 핵심 인물인 김인준을 제거하려던 거사는 실패로 끝나고 최의정권의 잔당이 축출되었다. 김인문은 김인준으로부터 적몰된 문황·권수균의 가산을 포상으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