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지는 미상이다. 할아버지는 최충헌(崔忠獻)의 가노(家奴)인 김윤성(金允成)이고 아버지는 무신집권자 김준(金俊, 초명 金仁俊)이며, 숙부는 김승준(金承俊)이다. 김준의 셋째 아들로서 김식재(金式材) 혹은 김석재(金碩材)로도 불렸다.
최씨무인정권(崔氏武人政權) 말엽 궁중의 각종 잡역(雜役)을 담당하는 무산계(武散階)의 하나인 전전승지동정(殿前承旨同正, 정9품)에 임명되었다. 1258년(고종 45) 3월 26일(丙子)에 아버지인 별장(別將) 김준과 대사성(大司成) 유경(柳璥)이 중심이 되어 최씨무인정권을 붕괴시킨 무오정변(戊午政變)에 참여하였다. 무오정변은 최의정권(崔竩政權)의 정치·경제적 실정에 불만을 품은 여러 정치세력이 결집되어 제4대 집권자인 최의를 죽이고 왕정복고(王政復古)를 이룩했던 역사적 사건을 말한다.
이때 김식재의 형인 김대재(金大材), 김용재(金用材) 등도 같은 전전승지동정으로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이어서 4월 1일 유경(柳璥)·김준·박희실(朴希實) 등이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책봉된 후, 같은 해 7월 김식재는 차송우(車松祐) 등과 더불어 원종공신(原從功臣) 성격의 위사보좌공신(衛社輔佐功臣, 同力輔佐功臣) 19인(혹은 20인)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김식재는 본래 신분이 미천하였기에 김식재의 자손들이 지배층으로 허통(許通)되는 특전을 받았다. 1260년(원종 원년) 6월 위사공신 13인에 포함됨으로써 위사보좌공신에서 위사공신으로 승격되는 영예를 누렸다.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으며 김식재의 형인 김대재와 더불어 일찍 죽었다고 한다.
1260년 6월 위사공신 13인에 포함되어 책봉받았고, 2년 후인 1262년(원종 3) 10월 6일(己未)에 공신당(功臣堂)의 벽상(壁上)에 도형(圖形)이 그려졌다. 1268년(원종 9) 12월 21일(丁酉) 김식재의 아버지 김준이 피살된 후 벽상공신(壁上功臣) 호칭이 삭제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