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지는 미상이다. 무신집권자 김준(金俊)의 처삼촌(妻三寸)으로서 고종∼원종대 환관으로 활동하였다.
1258년(고종 45) 3월 26일(丙子) 대사성(大司成) 유경(柳璥)과 별장(別將) 김인준(金仁俊, 金俊으로 改名) 등이 최씨무인정권(崔氏武人政權)의 4대 집권자인 최의(崔竩)를 죽이고 왕정복고(王政復古)를 실현했을 때, 김인선(金仁宣)은 김준과 연결되어 원종의 총애를 받았다. 같은 해 6월 나이 60세로서 액정국(掖庭局) 남반직(南班職)의 최고직인 내전숭반(內殿崇班, 정7품)에 이르렀으나 참직(參職)인 7품으로의 승진이 불가능하였다. 이때 우부승선(右副承宣) 김준이 참직에 임명하여 줄 것을 청하였지만, 원종이 나쁜 사례 하나가 될까하여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1268년(원종 9) 원종의 측근세력과 임연(林衍)이 결탁하여 김준을 궁궐로 유인하여 제거하려 했을 때 호위군사에 쌓여 궁궐로 진입하는 김준·김승준 형제를 보고도 그러한 사실을 전달하지 못함으로써 김준정권의 몰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후의 행적은 자세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