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출신지는 알 수 없으며 김준정권기 무신집권자 김준(金俊)의 가신(家臣)으로 활동하였다.
김준이 전국 여러 곳에 농장(農庄)을 개설하였을 때 문성주(文成柱)는 충청도의 농장을, 같은 가신인 지준(池濬)은 전라도(全羅道)의 농장을 각각 관리하였다. 이때 두 사람이 농민들에게 벼의 종자(種子) 한 말[一斗]을 빌려주고 가을에 미(米) 일석(一石)을 거두는 등 수탈을 일삼았다. 이에 김준의 아들들이 모두 이를 본받아 횡포를 자행하였다고 한다.
1265년(원종 6)에 해양후(海陽侯) 김준이 팔관회(八關會)의 연회를 위해 광정연례도감(廣庭宴禮都監)을 설치하고 주·군(州郡)에 명하여 연회에 필요한 물자를 바치도록 하였다. 이때 별감(別監)이었던 문성주가 온갖 방법을 다써서 백성들에게서 심하게 거두어 들였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이 어사대에 익명서를 붙여 그의 행태를 고소하였으나 김준이 죄를 묻지 않았다. 1268년(원종 9)에 낭장(郎將)에 이르렀으나, 같은 해 12월 21일(丁酉) 김준이 제거될 때 일당(一黨)으로 몰려 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