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현(固城縣) 출신이며 가계는 자세하지 않다. 박기는 최씨무인정권(崔氏武人政權) 제2대 집권자 최우(崔瑀)의 가신(家臣)인 전전승지(殿前承旨) 김준(金俊)이 최우의 애첩(愛妾)인 안심(安心)과 간통하다가 발각되어 고성현에 유배되었을 때 김준을 도와주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김준의 양자(養子)가 되었다.
1258년(고종 45) 3월 김준이 최씨무인정권 제4대 집권자 최의(崔竩)를 제거하고 정권을 잡은 후 개경(開京)으로 불러들이면서 벼슬살이가 시작되었다. 1265년(원종 6) 3월 대장군이었던 박기는 장군 오수산이 최충약(崔冲若)을 죽이려는 것을 막았다. 당시 김준이 해양부(海陽府)를 열었을 때 오수산은 조카인 오주연(吳朱然)이 그 부의 녹사(錄事)가 되기를 원하였는데, 최충약이 대신 임명된 것에 화가 나 그를 죽이려고 하였던 것이다.
다음해 6월 9일(庚午) 몽고에 파견되어 세조(世祖)의 생일을 하례하였다. 이어서 승선(承宣)에 임명되었다. 1268년(원종 9) 12월 21일(丁酉) 임연(林衍)이 김준을 죽이자 그를 원망하며 고기도 먹지 않고 밤마다 울다가 변고가 있을까 두려워한 임연의 무고(誣告)로 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