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해인사 지장시왕도는 1739년에 조성되어 해인사 관음전에 봉안되었던 불화이다. 19세기 초 화재로 관음전이 소실된 후 지장시왕도는 그 자리에 세워진 명부전으로 옮겨져 현재는 1741년에 조성된 시왕도와 함께 명부전 후불탱화로 봉안되어 있다. 처옥(處玉)이 대시주가 되고 혜식(慧湜)을 수화원으로 하여 윤탄(允坦), 진철(震哲) 등이 조성하였다.
세로 151.1㎝, 가로 179.8㎝의 삼베 바탕에 본존 지장보살을 비롯하여 시왕(十王), 판관(判官), 지옥사자(地獄使者), 선악동자(善惡童子), 옥졸(獄卒) 등 총 31명에 이르는 명부의 권속이 그려져 있다. 지장보살은 수미단 위 연화좌에 결가부좌하였으며, 수미단 옆에는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시립하였는데, 지장삼존이 이루는 정삼각형의 빗변을 따라 권속들이 위로 올라갈수록 작게 표현되어 보는 이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화면 위쪽으로 유도하고 있다.
지장보살은 승형(僧形)으로 머리에 흑갑사로 된 투명한 두건을 쓰고 있다. 두건은 어깨 아래까지 넓게 덮고 있으며 양쪽 귀 뒤로 흰색의 띠 매듭이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지장보살이 오른손에 보주, 왼손에 긴 육환장(六環杖)을 비스듬히 들고 있는 것과 달리 두 손을 결가부좌한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아 투명보주를 들었다. 얼굴은 둥글고 원만하며 다소 살이 찐 편으로, 가늘고 긴 눈썹과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간 눈, 아담한 코, 유난히 작은 입술 등 이목구비가 가는 필선으로 묘사되었다. 넓은 이마 가운데에는 팔자형의 머리카락이 그려져 있고, 입술의 아래 위, 턱에도 형식화된 수염이 표현되었다. 얼굴에 비하여 신체가 다소 큰 듯 하지만 신체는 전체적으로 단정하면서도 정사각형에 가까워 건장한 편이다. 착의법은 안에 군의(裙衣)를 입고 양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식(通肩式)으로, 꽃문양으로 가장자리를 장식한 붉은 가사를 입었다.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은 합장 또는 석장을 들고 투명한 두광을 지닌 채 본존을 향해 시립하였다. 도명존자는 지장보살과 동일한 가사를 걸치고 본존의 지물인 석장을 대신 들었으며, 무독귀왕은 문관 차림에 원유관(遠遊冠)을 쓰고 합장하였다. 이들 옆으로는 시왕이 각각 5명씩 홀을 들고 시립하였는데, 대부분 문관 차림에 원유관 또는 책관(冊冠), 일월관(日月冠) 등을 쓰고 있으나 지장보살 오른쪽에 있는 오도전륜대왕만이 투구를 썼다. 시왕 위로는 지옥사자와 판관, 옥졸, 동자 등이 좌우로 배치되었다. 지장보살 바로 옆에 서있는 사자는 양각(兩角)이 높게 솟은 관을 쓰고 두루마리를 들고 서있으며, 사자 위로는 명부를 펼쳐 든 판관과 지옥장군 및 선악동녀, 우두(牛頭)·마두(馬頭) 옥졸 등이 좌우 대칭을 이루며 시립하였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색채와 함께 세밀하고 숙달된 필선을 구사하였으며, 특히 인물들의 수염 하나하나까지도 섬세하게 그려낸 것에서 화승들의 필력이 숙달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채색은 밝은 적색과 녹색이 주를 이루며, 청색, 황색, 흰색 등을 사용하였는데, 특히 지장보살의 신광을 분홍색의 화문으로 가득 채워 전체적으로 밝고 화사한 느낌을 준다.
이 불화는 1739년에 수화원 혜식(慧湜)을 비롯한 6명의 화승이 관음전 불화로 조성하였다. 지장보살과 시왕, 판관, 지옥사자, 선악동녀, 옥졸 등 31명에 달하는 인물들을 표현하면서는데, 중앙의 본존에 비하여 권속들을 상대적으로 작게 묘사함으로써 많은 권속들을 효과적으로 배열하였다. 전체적으로 인물들의 형태에 안정감이 있고 신체 비례가 적절하며, 특히 수염 하나하나까지도 섬세하게 그려낸 것에서 화승들의 필력이 숙달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불화는 현존하는 명부전 지장보살도 가운데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조성된 불화로서, 18세기 전반 경상남·북도 지역 불화 화풍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