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종이 일월오봉도 병풍을 배경으로 용상에 앉아 정면을 향하여 있는 초상화.
개설
내용
이는 채용신(蔡龍臣)이 1900년 그린 고종의 초본을 근간으로 요청이 있을 때마다 제작했던 49세 고종어진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왼손의 서툰 표현과 일월오봉도의 거친 채색 등에서 다소 기량이 떨어지는 면모를 보여주는데, 이는 채용신이 설립한 채석강도화소(蔡石江圖畵所)의 제자들에 의해 모사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편 얼굴을 서양화법으로 사실적으로 그린 것, 공수(拱手)자세에서 벗어나 손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 바닥에 깔린 화문석 등은 전통시대 어진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근대적 요소이다.
일반인의 요청에 의해 고종어진이 반복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황제의 신격화와 관련이 있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벽사(辟辭)나 복을 기원하는 길상적 의미가 더해지며 일월오봉도가 배경에 그려졌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임진왜란 이후 관우를 모시기 위해 세워진 사당인 서울 동관왕묘(또는 동묘. 보물, 1963년 지정)의 동제관우상(銅製關羽像) 뒷면에 일월오봉도 병풍이 설치된 것이나, 전북대학교박물관 소장의 「관우상」에서도 동일한 지물이 확인되고 있어 그러한 견해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왕의 얼굴』(조선미, 돌베개, 2012)
- 「고종 황제의 초상: 근대 시각매체의 유입과 어진의 변용과정」(권행가, 홍익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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