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진은 강사포(絳紗袍)에 통천관(通天冠)을 쓴 고종이 의자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전신교의좌상(全身交倚坐像)이다. 원래 이것은 영친왕이 일본에서 소장하고 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일본 황실 가산정리 때 행방불명되었다. 이후 미국인이 소장하였던 것을 사토(佐藤)라는 일본인이 구입하여 1966년 한국에 기증한 것이다.
고종이 입고 있는 조복은 1897년 9월 17일 대한제국의 황제임을 천명할 때 처음 착용하였으며, 이는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 이전에는 삭망(朔望), 조강(朝講), 조근(朝覲) 등의 공식적인 조하 때 중국 친왕에 해당되는 강사포에 9량의 원유관(遠遊冠)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배경에 ‘八’자형으로 드리워진 휘장은 매우 이례적이며, 이는 일본에서 천황이나 쇼군(將軍) 등을 신격화할 때 사용된 것으로 일본 초상화의 영향이 감지된다.
더불어 두터운 채색이나 물상의 질감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한 것 등은 근대 한국의 화가들이 사용하지 않았던 기법으로 일본인 화가에 의해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밖에 고종의 얼굴이 1907년 9월 순종과 순종비 윤씨의 가례 당시에 촬영한 사진과 매우 유사하여 사진을 보고 그렸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국립고궁박물관의 유물 대장에는 ‘남계화(嵐溪畵)’라고 기록되어 있어 제작 경위와 관련하여 진전된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현전하는 고종의 여러 어진들 가운데 새로운 조형적 요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될 뿐만 아니라 근대 조선 왕실의 변모를 살필 수 있는 자료로서도 높은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