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보령 출신. 호는 문암(文岩). 문학평론가로서 문단에 공식적으로 출현하기 전부터 날카로운 비평활동을 하였다. 1963년 1월 10일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중심이 된 예비평론가들의 동인 ‘정오평단(正午評壇)’이 문학평론동인지 『비평작업(批評作業)』을 발행하였는데, 임중빈은 기성세대의 평론가 백철의 전통론에 대한 신랄한 문제제기와 비판의 문제의식을 보인다. 이후 참여문학론자로서 역사적 전망을 모색하는 비평 활동을 하다가, 1968년의 ‘통혁당 사건’과 관련한 『청맥(靑脈)』지 폐간 및 1970년 월간 『다리』지 필화사건에 휘말려드는 고초를 겪었다. 이후 문학평론가보다 출판인으로서 활동에 비중을 두다가 2005년 작고하였다.
196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닫힌 사회의 희화(戱畵)-김유정론(金裕貞論)」이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로서 본격적 비평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미 그는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시절 대학생들이 주축이 된 ‘정오평단(正午評壇)’을 결성하여 문학평론동인지 『비평작업(批評作業)』(1963)을 통해 문학평론가로서의 역량을 선보였다. 그의 비평 활동은 1960년대 한국문학사에서 ‘참여문학론’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의 참여문학론은 문학을 대상으로 하는 협소한 차원의 문예적 글쓰기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문학을 넘어 역사와 대면함으로써 4·19로 획득한 민족적·민주적 이념의 주체성을 기반으로 한 비평이다. 특히 그의 참여문학론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근대적 주체로서 개별자, 즉 개인에 관심을 두기보다 근대적 주체로서 집단적 자아인 민중을 비평의 기반으로 삼는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 그는 전후세대의 문학뿐만 아니라 4·19세대의 문학에 이르기까지 팽배한 식민지적 무의식과 서구의 미학을 추종하는 데 대한 한국문학의 몰주체성을 반성적으로 성찰하였다. 그런가 하면, 4·19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프랑스의 68혁명과 미국의 뉴레프트운동의 맥락, 즉 서구의 진보적 성향의 사회운동과 함께 이해하면서 4·19세대가 추구해야 할 사회문화운동의 방향을 이른바 ‘청년문화론’으로 문제화하였다.
이러한 임중빈의 참여문학론은 한국비평사에서 ‘민중적 휴머니즘’에 기반한 ‘민중적 리얼리즘’을 선취(先取)한 바, 1970년대의 본격적 리얼리즘론을 향한 이론적 교두보를 놓았다. 전후문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4·19세대의 역사의식에 기반한 임중빈은 참여문학론자로서 비평적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