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고령에서 태어났다. 호는 춘파(春波)이고, 일제 말기에 이름을 암곡종원(岩谷鍾元)으로 바꿔 창씨개명에 참여하였으며, 그의 대표적 평론 중 하나인 「결전 문학의 이념」이 『국민문학』(1944년 4월호)에 발표되는 것을 비롯하여, 『동양지광』,『매일신보』등에 기고한 6편의 저작물이 친일 평론으로 평가받았다. 1941년일본대학(日本大學) 문과를 졸업했고, 만주에서 남만공업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1955년부터 1968년까지는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숙명여대 총장 직무대리와 건국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1938년『만선일보』에 수필「이역에 젖은 애상」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해방공간에서 김동리, 조연현 등과 함께 그가 주간으로 있던 『생활문화』의 ‘토요회’를 모태로 1946년 4월 4일 ‘조선청년문학협회(약칭 청문협)’를 결성하였다. 그의 비평 활동은 김동리, 조연현 등과 함께 일체의 정치적·사회적 이념을 초월한 본격 문학에 매진함으로써 프로문학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무엇보다 그는 한국적 현실을 인도주의와 생명주의로 파악하는바, 새로운 유형의 창조, 즉 신인간형을 작가에게 주문했다. 그의 신이상주의와 신인간형은 문협 정통파의 문학관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이론의 기반이 되었다. 특히 그는 과학과 이데올로기란 이름으로 불리우는 비평과 거리를 두는 감성주의 비평의 태도를 견지하였다.
1980년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