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4월에 개성 청년들이 발기한 미술단체로, 1923년과 1924년 2회에 걸친 스케치 공모전을 개최하였다. 일반에게 스케치를 장려한다는 목적에 따라 개최되었던 이 공모전은 소학생부와 중학생부, 일반부[素人部]로 나누어 공모를 받았으며, 스케치 이외에 예술사진 현상공모도 함께 하였다. 1회 스케치전람회의 작품 접수는 개성 북본정(北本町) 문화관 고려여자관에서 받았다. 심사위원으로 아동문학가 마해송(馬海松)과 유화가 공진형(孔鎭衡), 도화교사인 최중순(崔重淳, 송도고등보통학교) 등이 참여하였으며, 응모작 총 230점 중 입선된 46점은 6월 16일에서 18일까지 개성 남대문 옥상에서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박응창(朴應昌)의 「첫 여름의 봄」, 조춘선(趙春善)의 「남성병원」이 특선으로 뽑혔다.
제2회 스케치전람회는 1924년 6월 28일에서 30일까지 같은 장소에서 개최되었다. 2회에는 1회보다 두 배에 가까운 450여 점이 응모되어 입선 183점, 입상 58점이 선정되었다. 연필화ㆍ크레파스화ㆍ수채화ㆍ유화ㆍ사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출품되었는데, 소학생부에서는 개성제일보통학교 학생 김인승(金仁承)을 비롯한 3명, 중학생부는 송도고등보통학교의 박응창을 비롯한 2명, 일반부는 개성의 신태흥을 비롯한 2명이 각 1등을 차지했다. 홍엽회의 활동은 이후 더 이상의 활동기록이 없어 2회로 단명한 단체로 보인다.
비록 2회에 걸친 스케치 공모전으로 끝이 났으나 이 단체는 1920년대 초반 한국 근대 양화 도입기에 결성된 지역미술단체로써 서양화뿐 아니라 사진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활동을 전개했던 계몽적 성격의 청년미술단체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그리고 홍엽회의 스케치 공모전에서 보여준 참여자들의 호응도는 1920년대 초반 개성의 서양화 교육 및 대중화 양상을 보여주는 일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