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김환기가 1970년에 그린 유화이다. 김환기의 1970년대 점화의 대표작이다. 캔버스에 유채로 그렸으며, 세로 236㎝, 가로 172㎝이다. 1970년 한국일보사에서 주최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은 시인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이 작품은 점의 크기와 색채의 농담과 번짐의 차이로 인해 마치 별빛이 부유하는 밤의 풍경 같은 우주적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고 평가된다. 김환기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1971년부터 1972년까지 대작의 점화를 다수 제작하였다.
캔버스에 유채. 세로 236㎝, 가로 172㎝. 개인 소장. 김환기의 1970년대 점화의 대표작이다. 점화의 작업방식은 화면 전체에 점을 찍고 그 점 하나 하나를 여러 차례 둘러싸 가는 동안에 색이 중첩되고 번져나가도록 하는 방식으로 전체 화면을 메꾸어가는 것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먹색에 가까운 짙은 푸른색의 작은 점들을 화면 전체에 찍어나간 작품으로, 무심코 찍은 점의 크기와 색채의 농담과 번짐의 차이로 인해 마치 별빛이 부유하는 밤의 풍경 같은 우주적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고 평가된다.
김환기는 1933년 일본 유학을 떠나 1940년대 초반까지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 자유미술가협회, 미술창작가협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구성주의 계열의 추상미술을 국내에 도입한 초기 모더니스트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일본유학시기(1930년대1940년대 초반), 해방 후부터 뉴욕으로 떠나기 전까지(19451963), 뉴욕시기(19641974)로 크게 나뉜다. 해방 이후 그가 신사실파(19481953)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시기부터 자연 소재를 기반으로 한 반추상화를 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파리체제시기(1956~1959)를 거치면서 달, 여인, 항아리, 매화, 사슴 등의 한국적 소재를 두터운 마티에르 효과를 낸 화면에 단순화시켜 표현하는 서정적 반추상화로 정착되었다. 이러한 반추상양식이 추상화로 발전한 것은 1964년 뉴욕으로 이주한 이후부터이다.
김환기가 뉴욕으로 떠난 후 한국화단에서 잊혀질 무렵인 1970년 한국일보사에서 주최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 김환기는 자신의 근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출품하여 대상을 받았다. 반추상화에서 화면 전체를 점으로 찍은 추상화로의 변신은 당시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작품의 제목은 시인 김광섭(金珖燮)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즉 “저렇게 많은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밤이 깊을 수록/별은 밝음 속에서 사라지고/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이렇게 정다운/너 하나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이다. 김환기는 이러한 자신의 점화에 대해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가지 생각하며 찍어가는 점”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라고 그의 일기에 쓰고 있다.
김환기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1971년부터 1972년까지 대작의 점화를 다수 제작하였다. 가로 2m, 세로 3m 정도 크기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에는 대략 4주일 정도가 걸려 1년 동안 평균 10여 점 정도를 제작했다. 캔버스는 작가 자신이 직접 만들었으며 광목을 캔버스에 매어 아교칠을 한 다음 필요한 만큼의 색을 풀어서 유리병에 미리 준비한 후 점을 찍어나가는 방식으로 작업하였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후 그는 화면에 활형의 곡선을 도입한다든가, 하얀 선을 도입하기도 했으며 푸른색, 주황색, 빨강색 등 색조의 다양화를 꾀하기도 했다. 이 새로운 요소는 화면 안에서 공간의 확장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보다 신비로운 우주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했다.
뉴욕시기 김환기의 점화는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색면추상과 같이 단색화, 전면 균질적 화면(all over painting)의 성격을 지니나 색조의 미묘한 변조와 농담의 변화, 발묵효과와 같은 번짐 효과 등을 통해 그들과 다른 세계 즉 동양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우주적 공간의 이미지를 담은 추상화를 만들어냈다고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