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사성(師聖), 호는 천유자(天遊子)이다. 아버지는 덕홍(德弘), 어머니는 정부인 영양남씨(貞夫人 英陽南氏)이다. 시(詩)로써 당대에 이름난 인물이다.
문집의 구성을 살펴보면, 권1은 시(詩) 90수, 권2는 시(詩) 71수, 권3은 시(詩) 145수, 권4는 시(詩) 94수, 제문(祭文) 11편, 권5는 가장(家狀), 논(論), 제문(祭文), 수직불양론(受職不讓論), 만시(輓詩), 부록(附錄), 권6은 서(序) 8편으로 되어 있다.
2권 6책. 인쇄본.
「우차사혜시(又次謝惠詩)」는 총 10수에 재화(再和) 8수로 되어 있는데 오언절구(五言絶句)이며, 같은 제목에 같은 운으로 약 20수를 더 지었다.
권5의 「수직불양논(受職不讓論)」은 “마땅히 사양하여야 할 때 사양하지 않는 것과 마땅히 사양하지 말아야 할 때 사양을 하는 것은 모두 예가 아니다.”라는 말로 시작하여 조리있게 서술한 글로, 저자가 영주(榮州) 동쪽마을에 퇴거하여 살고 있을 때 길이 험하여 사람과 말이 다닐 수 없었는데, 매년 중추(仲秋) 초순에 남북국에 사는 사람을 총동원하여 길을 다듬고 평탄하게 만들었더니 다니기 쉬울뿐만 아니라, 말을 타고도 다닐 수가 있게 되어 대도가 평탄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남궁의(南宮義)가 온성(穏城:함경북도 온성군)의 두강(豆江) 중류에서 바람을 만나 같이타고 있던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개가 가서 옷을 물고 배로 올리기를 수십 번 했지만 실패하여 끝내 구하지 못하였다. 그 뒤 첩이 그 개의 시체를 거두어 팔아먹었다하니 애석하다고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