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도산족계좌목』은 조선 후기 대전에서 대대로 살았던 박진의 7대~11대 자손들을 수록한 1694년의 필사본 족계 문서이다. 2012년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633년(인조 11)에 서문 등이 작성되었고, 1694년(숙종 20년)에 재작성된 책이 남아 있다. 족계의 범위는 충주 박씨로 대전에 처음 살기 시작한 박광리의 첫째 아들 박진의 7·8·9·10·11대 후손들이다. 「입의」나 서문의 서술과, 본문 명단에 해당하는 「족계좌목」에서 외손의 포함 여부에 차이가 나타난다. 17세기 전반과 후반 사이에 친족 결합 방식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정의
조선후기 대전에 세거한 충주박씨의 족보. 충주박씨족계.
개설
서지적 사항
내용
충주박씨 도산족계의 설립시기는 박재휘(朴載輝, 1592~1674)가 서문을 쓴 1633년(인조 11)으로 보인다. 그러나, 좌목에 올라 있는 족계원 대부분이 1633년 이후에 출생한 것으로 보아『도산족계좌목』은 후대에 다시 작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재작성 시기는 좌목의 앞부분 상단에 “갑술하 개수정(甲戌夏改修正)”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갑술년은 1694년(숙종 20)이다.
족계의 범위는 입향조 박광리(朴光理)의 첫째 아들 박진의 7·8·9·10·11대 후손들이다. 박광리는 대전 유천동의 고려말 사족이었던 이춘계(李春啓)의 사위로 입향하였다. 입향시기는 박광리의 첫째 아들 박진의 출생년대가 1366년(공민왕 15)인 것으로 보아 14세기 이후로 추정된다.
입의에서 “외손 가운데 스스로 원하는 자는 계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한다”라고 한 것과, 서문에서 “1633년(순정 6년, 계유) 3월 계축일에 우리 동종 친척 30여인 및 외손 약간 명이 공주 유성의 도동 선산의 곁에서 모였다(崇禎六年歲在癸酉暮春之癸丑 惟我同宗親三十有餘人及外姓若干 聚於公山儒城之道洞 蓋先壠側也)”라고 한 사실에서 외손도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족계좌목」에는 외손의 기록이 없는데, 1694년(숙종 20)에 다시 작성하는 과정에서 서문은 원문을 그대로 필사한 다음 좌목에는 재작성할 때의 족계원만을 올렸기 때문이다.
한편 「족계좌목」에는 서자 박지열(朴志烈) · 박지병(朴志炳)과 서손 박문정(朴文貞) · 박문거(朴文擧)가 수록되어 있다. 이로써 족계가 성립될 당시에는 박진의 친손, 외손, 서자 및 서손들이 함께 참여했지만 외손은 이후에 배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친족결합이 17세기 전반과 후반 사이에 부계친족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족계문서에는 박진의 자손 모두가 족계 구성원으로 포함되지는 않았다. 박진의 자손들은 족보상 모두 20개 분파로 나뉘는데, 그 가운데 족계의 좌목에 오른 족계원은 대전 유성에 세거한 둔옹공파(遯翁公派), 유성구 도안동에 세거한 오한당파(五寒堂派), 서구 가장동에 세거한 진사공파(進士公派)의 자손들이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문화재현지조사의견서」(성봉현, 대전광역시청, 2011)
- 「조선후기 친족결합 양상: 충청도 지역 족계를 중심으로」(성봉현,『고문서연구』21, 2002)
-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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