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와 일광보살(日光菩薩), 월광보살(月光菩薩) 등 치성광여래삼존 만을 묘사한 칠성도로서, 1857년(철종 8)에 화승 응상(應相)을 수화승으로 하여 덕유(德裕), 채홍(采洪) 등이 함께 조성하였다.
1857년(철종 8) 작. 세로 123.1㎝, 가로 159.5㎝의 화면 중앙에는 치성광여래가 녹색의 두광과 오색 광선이 묘사된 신광을 배경으로 화면 하단에서 솟아오른 연화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였다. 머리에는 육계가 큼직하며 중간 계주와 정상 계주로 장식하였는데, 정상 계주에서 나온 두 줄의 광선이 좌우로 길게 뻗어나가고 있다. 갸름한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작게 표현되었으며 오른손은 가슴 위로 들어 손가락을 마주 잡고 왼손에는 커다란 금륜(金輪)을 들었다. 착의법은 녹색의 군의 위에 편단우견식(偏袒右肩式)으로 붉은 대의를 걸쳤는데, 대의 자락이 오른쪽 어깨를 살짝 덮었다. 이러한 착의법은 조선 후기 불상에서 주로 표현되던 것으로, 불상과 불화 간의 도상적 공통점을 보여준다.
협시보살은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배경으로 연꽃 대좌 위에 정면을 향해 서있다. 두 보살 모두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썼으며 보관 중앙에는 각각 해와 달을 그려 넣어 일광보살, 월광보살임을 표시하였다. 둥근 얼굴에 작은 이목구비 등 본존의 얼굴과 유사하며, 두 손으로는 긴 연꽃가지를 비스듬히 들었다. 두 협시보살의 신광 내부는 꽃으로 가득 채워 화려함을 더하였으며, 광배 바깥에는 황색의 채운을 가득 그려 장식하였다. 녹색과 적색을 주조로 하고, 황색과 흰색 그리고 청색 등을 함께 사용하였다.
이 불화의 수화승인 하은 응상(霞隱應相)은 19세기 중 · 후반에 경상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사불산화파(四佛山畵派)의 대표적인 화승으로, 1876년(고종 13)~1887년(고종 24)에 걸쳐 10여 점의 불화를 남겼다. 불화에서 보이는 가는 눈과 눈썹, 이목구비가 다소 모여 있는 듯한 얼굴형, 밝은 적색과 녹색의 화사한 색감, 화면 아래에서 솟아오른 연화 대좌, 광선으로 가득 광배 안을 채우는 기법 등은 신겸을 비롯한 사불산화파의 특징적인 양식인데, 이 불화에서 그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2012년 1월 30일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작품은 가로로 긴 화폭에 결가부좌한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연꽃을 든 두 협시보살이 시립한 모습을 그린 것으로, 적 · 녹 · 청색이 주조색을 이루며 안정된 구도와 차분한 색감이 특징이다. 사불산화파의 대표화승인 하은 응상의 초기 작품으로, 19세기 중엽 경상도 지역의 불화 화풍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