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 3동 사자암에 봉안된 조선시대 괘불.
구성 및 형식
내용
1909년(융희 3) 사자암 괘불은 1901년(광무 5) 동대문 연화사 괘불을 이용하였다. 사자암 괘불을 그린 한곡당(漢谷堂) 돈법(頓法) 스님이 8년 전 연화사 괘불을 그린 인연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연화사 괘불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대세지보살, 왼쪽에 관세음보살이 나왔었는데, 사자암 괘불은 석가불을 중심으로 각각 약사불과 아미타불로 바꿔놓았다.
약사불과 아미타불의 수인은 보살들이 꽃을 든 모습과 같다. 또한 연화사 괘불에 있던 가섭과 아난존자를 생략하였다. 그래서 문수동자와 보현동자의 크기가 당대 경기지역 괘불의 그것에 비해서 훨씬 커졌다.
의의와 평가
화기에는 ‘영산탱(靈山幀)’이라고 되어있고 대황제폐하, 황후폐하, 황태자전하[순종 · 순정효황후 · 영친왕]의 수명 장수를 기원하여 8월에 제작되었다.
참고문헌
- 『서울의 문화재』제5권(서울시사편찬위원회, 2011)
- 『한국의 불화』35(성보문화재연구원, 2005)
- 국가유산청(www.khs.go.kr)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