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앙일보』에 1934년 8월 1일부터 9월 19일까지 연재되었다. 민족항일기에 문학을 하는 당대 지식인의 무기력한 자의식에 비치는 일상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이상(李箱)이 하융이란 필명으로 삽화를 그렸다.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26살의 구보는 정오에 집을 나와 광교·종로를 걸으며 귀도 잘 들리지 않고 시력에도 문제가 있다는 신체적인 불안감을 느낀다. 무작정 동대문행 전차를 탄 뒤 거기서 선을 본 여자를 발견하나 모른 체하고 후회하며, 혼자 다방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자기에게 여행비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고독을 피하려고 경성역 삼등대합실에 가나, 오히려 온정을 찾을 수 없는 냉정한 눈길들에 슬픔을 느끼며, 거기서 만난 중학 시절 열등생이 예쁜 여자와 동행인 것을 보고 물질에 약한 여자의 허영심을 생각한다. 또 다방에서 만난 시인이며 사회부 기자인 친구가 돈 때문에 매일 살인강도와 방화범인의 기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애달파 하고, 즐겁게 차를 마시는 연인들을 바라보면서 질투와 고독을 동시에 느낀다.
다방을 나온 구보는 동경에서 있었던 옛사랑을 추억하며 자신의 용기 없는 약한 기질로 인해 여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느낀다. 또 전보배달의 자동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며 오랜 벗에게서 한 장의 편지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 젖는다.
여급이 있는 종로 술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며 세상 사람들을 모두 정신병자로 간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 하얀 소복을 입은 아낙이 카페 창 옆에 붙은 ‘여급대모집’에 대하여 물어오던 일을 기억하며 가난에서 오는 불행에 대하여 생각한다. 오전 2시의 종로 네거리, 구보는 제 자신의 행복보다 어머니의 행복을 생각하고 이제는 생활도 갖고 창작도 하리라 다짐하며 집으로 향한다.
이 소설은 작자 자신의 자전적 소설로서 1930년대 문학인의 정신구조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당시 문학인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표를 제공하고 있다. 또 「성탄제(聖誕祭)」·「비량(非凉)」 등의 초기 단편들에서 인물의 심리를 면밀하게 탐구하던 것과, 장편 「천변풍경(川邊風景)」에서 나타나는 철저한 관찰적 방법과의 혼재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중편이라는 점에서 작자의 작품 변모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