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가 지은 장편소설. 1955년 11월부터 1957년 4월까지 18회에 걸쳐 ≪현대문학≫에 연재되었으며, 1958년일신사(日新社)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그 뒤 1982년홍성사(弘盛社) 간행으로 다시 개작, 발표되었다. 표제의 ‘사반’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좌도(左盜)로서, 예수의 삶을 그 배면에 깔면서 사반의 지상적인 투쟁의 일생을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소재는 성서 등에서 얻어진 것이지만 기록의 사실성과 소설적인 관심의 허구성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다. 사반은 어려서부터 무술(武術)을 좋아하였으며, 유대를 점령한 로마군을 물리치기 위하여 열여덟 살에 집을 나와 무력을 기른다. 그 뒤 3년간 유랑하면서 그는 유대의 독립을 위해서는 개인의 무술보다 집단적으로 훈련된 군대와 민중을 움직일 수 있는 메시아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점성술사 하닷의 계시를 듣고 신봉하면서 메시아와의 만남을 통하여 그와의 협력으로 구원이 지금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는 메시아로 생각되는 예수를 두 번 만나면서 그가 땅 위에 새 나라를 세우려 하기보다는 하늘나라에 새 나라를 세우려 하는 자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한 실망과 더불어 그는 사생활에서는 똑같이 사랑하며 그에게 힘이 되었던 마리아와 실바아 가운데 예수에게 귀의한 마리아를 잃게 되고, 신봉하던 하닷까지 잃으면서 점차 자신감을 상실한다. 그러나 결국 아굴라의 흉계로 로마군에게 잡혀 십자가에 처형될 때도 예수를 만난 사반은 끝까지 예수가 말하는 내세의 낙원을 거부하며 죽는다.
이 작품은 결국 천상적인 것과 지상적인 것의 대립을 그린 것으로, 사반이 구하는 유대의 독립이 지상적인 것인 데 비하여 예수가 뜻하는 생명의 물로 거듭 태어남은 천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반과 예수는 일치를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예수와 사반의 결렬을 통하여 천상적인 것과 지상적인 것의 대립은 어느 한 쪽만으로도 불완전하며, 서로를 보완할 때 해소될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발상은 정신적인 실바아와 육체적인 마리아에 대한 사반의 동등한 사랑의 태도와도 관련된다. 지상의 유대 왕국을 위하여 메시아의 날을 기다리는 사반과 천상 왕국을 위한 예수와 두 번의 대면은 이 작품 구성의 중대 대목으로 작품의 내면적 의의가 직접 제시되는 부분이나 예수의 ‘새 나라’와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사반의 기대는 끝내 결렬된다.
결국 이 작품은 사반의 ‘인간주의’와 예수의 ‘천상주의’를 서로 맞서게 함으로써 구원을 위한 현실 참여의 문제 및 종교나 종교인이 가지는 이상과 현실간의 괴리를 암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