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존인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시왕 판관, 사자, 옥졸, 동자 등이 대칭으로 3단을 이루며 배치되었다.
1896년(건양 1) 작. 지장보살은 키형의 광배를 배경으로 두 손으로는 왼손에 든 투명보주를 감싸쥐듯이 들고 바닥으로 부터 솟아오른 연꽃 위에 유희좌의 자세로 앉아있다. 머리에는 투명한 흑갑사의 두건을 쓰고 있는데, 귀 뒤로는 두건을 묶은 장식이 표현되었으며 두건은 귀 뒤를 지나 어깨 아래까지 넓게 펼쳐져 있다. 좌우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비롯하여 시왕과 판관, 사자, 옥졸, 동자가 3단으로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었다. 오른쪽 협시인 도명존자는 지장보살의 지물인 석장을 대신 들고 정면을 향해 서있으며 무독귀왕은 책관(冊冠)을 쓰고 경궤(經櫃)를 들고 몸을 약간 비튼 채 정면을 향해 시립하였다. 이들 옆으로는 관을 쓰고 홀을 든 시왕이 좌우 각 5구씩 나란히 시립하였는데, 투구를 쓴 오도전륜대왕을 제외하고는 모두 책관 또는 보관을 쓰고 있다. 화면의 상단에는 4구의 동자와 4구의 판관, 2구의 지옥사자, 우도옥졸과 마두옥졸이 대칭을 이루며 시립하였다.
이 불화는 19세기말~20세기 전반에 걸쳐 마곡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근대의 화승 금호약효(錦湖若效)가 수화승이 되어 만총(萬聰), 법임(法任)과 함께 제작한 것이다. 약효는 1860년(철종 11)대 후반부터 불화를 그리기 시작하여 입적하기 4년 전인 1924년까지 50년 이상 많은 불화를 제작하였는데, 1883년(고종 20)에 갑사 대비암 독성도를 그리면서부터 수화승으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는 1890년(고종 27)대에 들어서 화장사 감로도와 구품도(1893년), 법주사 원통보전 관음보살도(1897년), 법주사 팔상전 팔상도(1897년)에서 보듯이 경상도지역과 전라도지역의 전통적인 도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불화를 제작하였는데, 보은사 지장시왕도에서도 그러한 경향을 엿볼 수 있다. 2009년 12월 4일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근대 계룡산화파(鷄龍山畵派)의 대표화승인 금호약효가 1896년(건양 1)에 제작한 지장시왕도이다. 키형의 광배를 두른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3열로 권속을 정연하게 배치하였는데, 이러한 구도와 지장보살의 모습은 경상북도 사불산화파(四佛山畵派)의 화승인 퇴운신겸(退雲愼謙)이 1813년(순조 13)에 제작한 예천 용문사 지장보살도와 유사하여 신겸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장보살의 석장을 도명존자가 들고 있는 것이라던가 지장보살의 바로 아래 배치되었던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무릎 아래쪽으으로 옮기고 육보살을 비롯한 일부 권속을 생략한 점 등은 전통적인 도상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응용하여 새로운 도상을 창출해 내었던 약효의 화풍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