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충청남도 천안 출생으로, 192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 경성제대 제2회 예과에 입학해 오명회(五明會) 등 교내 모임에서 이강국(李康國)·한기준(韓基駿)·성낙서(成樂緖)·고유섭(高裕燮) 등과 교유했다.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졸업 후 1931년 같은 대학 의학부 연구사 겸 조수로 생리학, 세균학, 소아과학, 위생학 등을 연구했다. 1942년 해직되어 이병남 소아과의원을 개원했다.
1945년 해방 후 경성대학 의학부 소아과 교수가 되었고, 9월 15일 이선근(李先根)·조동수(趙東秀)·김영택(金榮澤)·박용래(朴容來)·김정윤(金正潤) 등과 대한소아과학회 창립 발기인회를 결성했다. 1947년 1월 민주주의민족전선 확대중앙위원회에서 51명의 상임위원 중 의학계 대표 1명으로 선출되었고, 동년 8월 수도경찰청의 민주주의민족전선 관련 인사 검속을 통해 체포되었다.
1947년 11년 서울의사회 부위원장을 역임했으나, 월북해 1948년 북한 제1차 내각의 보건상에 취임하였다. 조선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을 지냈다. 1949년 허헌(許憲)·이영(李英)·한설야(韓雪野) 등과 더불어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조사위원회에 소속되었고, 1958년 적십자회 위원장, 1962년 3월 의학과학원 부원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