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탁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는 가운데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에 따라 미국과 소련의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개최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미군정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 국내에 보도되었다.
좌익 중심의 찬탁운동과 우익 중심의 반탁운동의 대결이 극심해지는 가운데 1946년 6월 3일, 각지를 순회하는 도중 이승만은 정읍에서 “이제 우리는 무기 휴회된 공위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 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 이북에서 소련을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될 것이다.”라는 정치적 발언을 했다.
이 발언 이후, 이승만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본격적으로 나섰고, 그해 12월부터 1947년 4월까지 미국에 건너가 남한 단독정부수립을 촉구하는 외교활동을 벌이고 돌아왔다.
그러나 소련붕괴 이후 공개된 소련정부의 기록, 특히 스탈린의 북한에 대한 지시자료를 검토한 일부 학자들은 스탈린의 북한 단독정부수립 계획은 이승만의 발언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