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시마즈요시히로에 의해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도공으로 사스마도기(薩摩燒)를 만들어 심수관가를 개창한 인물.
1598년 12월, 현재 가고시마(鹿兒島)지역의 다이묘(大名)였던 시마즈요시히로에 의해 남원등지에서 조선피로인 80여 명을 가고시마지역으로 피랍하여 왔는데, 그 중 40여 명이 가고시마현 구시기노시마하라(串木野島平)에 상륙하였다. 이 가운데는 심당길(沈當吉)이 끼어 있었는데, 심당길은 청송 심씨로 남원근교에서 박평의(朴平意)와 함께 피랍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족은 1603년 구시기노(串木野)로부터 현재의 히오키군 히가시 이치키죠 미야마(日置郡 東市 來町 美山) 나에시로가(苗代川)에 이주하여 나에시로가와야키(苗代川燒)를 열었다.
그로부터 18년 후 심당길은 박평의와 함께 도자기의 원료인 백토(白土)를 발굴하여 오늘날의 사쓰마야끼도기를 개창하였다. 사쓰마번주는 이들에게 사무라이급(士班)의 예우를 하였으며, 이들이 구워낸 도자기에 사쓰마의 번명(藩名)을 붙여 사쓰마도기라고 명명하였다. 생몰연대는 알 수 없으며, 현재 나에시로가와 미야마에 있는 역대심가박물관에는 심당길이 만들었다고 전하는 ‘히바카리차완(火計り茶碗)이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