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서 활동한 초기 공산주의단체인 일월회 회원들이 과학적 사회주의를 보급하고 이론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1926년 6월부터 1928년 4월까지 발간한 기관지이다.
일본에서 한인 공산주의운동을 주도한 이여성(李如星)과 안광천(安光泉) 등은 1925년 1월 일월회(一月會)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이론투쟁의 전개를 선언하였다. 이후 안광천·이여성·하필원(河弼源)·김정규(金正奎) 등은 고려공산청년회를 새로 결성하였는데, 이들은 1926년 6월 1일 『대중신문』을 창간하고 1천부를 발행했다. 발간지 주소는 도쿄 시모토츠카(下戶塚) 560번지이다.
대중신문의 초기 편집진은 화요파와 서울계의 1백여 명을 망라하는 집필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사설을 통해 각 부문의 조직과 대중의 정예를 포괄할 전위를 편성할 것과 대중을 지도하여 투쟁을 집중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1926년 6월 1일 창간호에는 당시 일본 공산당의 지도이론가인 야마카와 히토시(山川均)가 작성한 「일치를 위하여」와 백무(白武)의 「조선운동의 통일과 그 촉진」란 글이 실려 있다. 이후에 이 신문에는 「신간회는 제2회대회를 맞으려한다」(제9호)는 사설을 통해 민족유일당운동 전개를 표방하였고, 「일본공산당 전국적 대검거 호외」판을 통해 일본검찰의 사회운동 탄압을 비판하며 치안유지법 반대와 한일 무산자 공동투쟁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담은 이 신문은 국내 각지에 지국을 운영하며 배포하였는데, 일제가 여러 차례 압수를 하였다. 현재는 제9호(1926년)부터 제13호(1928년 4월 29일자)까지만 확인할 수 있다.
『대중신문』의 발간을 주도한 세력은 조선공산당 3차 지도부를 형성한 재일 유학생들로서 사상통일과 대중운동의 지도를 강조한 당시 지도부의 의식을 반영한 신문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