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일본무산자소비조합연맹은 1930년대 초 일본에서 운영된 좌파계 소비조합의 전국조직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중간착취를 배제하고 미래사회의 이상을 목표로 하는 분배기관의 구축을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합법성과 대중성을 유지하면서 좌파계 노동운동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었다. 1920년대에는 관동소비조합연맹이, 1930년대에는 일본무산자소비조합연맹이 중심을 이루었다. 조선인 운동가들이 이 연맹의 집행위원에 선출되었고, 일부 조선인소비조합이 가입하는 등 조선인들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30년대 후반 탄압이 거세지고 일본의 전시 체제가 시작되면서 1938년 해산되었다.
정의
1930년대초 일본에서 운영된 좌파계 소비조합의 전국조직.
개설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관동(關東)소비조합연맹은 1922년에 결성된 소비조합 연합체인 소비조합연맹을 토대로 1926년 탄생하였다. 소비조합연맹은 1924년말에 가맹연합이 21개, 조합원수는 5천여명에 달하였다. 관동(關東)소비조합연맹은 내부적인 견해 대립으로 1929년에 분열되어 우파는 1930년에 소비조합회로 독립하였다.
관동소비조합연맹의 뒤를 이은 일본무산자소비조합연맹은 1932년 3월에 전국조직으로 탄생하여 1938년 해산될 때까지 활동을 전개했다. 일본 거주 조선인 사이에서도 지역 차원의 소비조합 결성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일본무산자소비조합연맹 발족 당시에 이미 김태욱(金台郁)·김경중(金慶中)·윤혁제(尹赫濟) 등 오사카 지역 운동가들이 집행위원에 선출되었고, 동대판(東大阪)소비조합 등 일부 조선인소비조합이 가입하기도 하였다. 김태욱은 중앙위원과 교육출판위원으로 활동했고, 기관지의 조선어판을 발행하는 등 조선인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을 펼쳤다.
기능과 역할
1933년 5월에 관서지방협의회는 관서(關西)지방위원회로 개칭되었고, 대동소비조합과 근애소비조합의 조직화에 역할을 담당한 김치중(金致仲)이 일본무산자소비조합연맹의 서기로 활동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1930년대 초기 大阪지역 협동조합과 조선인운동」(정혜경, 한일민족문제학회, 『한일민족문제연구』1, 2001)
- 『日本生活協同組合運動史』(山本秋, 日本評論社, 1982)
- 「阪神消費組合について-1930年代」(堀內 稔, 『在日朝鮮人史硏究』7, 1980)
- 「社會運動の狀況」(內務省 警保局,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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