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17년과 1918년 두 차례 미국 뉴욕에서 열렸던 세계약소민족회의.
경과
제2차 동맹회의는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직후인 1918년 12월 14일부터 이틀간 뉴욕의 맥알핀호텔과 자유극장에서 열렸다. 이 회의를 앞두고 대한민국민회 중앙총회장 안창호(安昌浩)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북미지방총회의 임원 및 유지인사들과 협의한 바,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1) 파리평화회의와 소약국민동맹회에 한인 대표자 3명을 파견한다. (2) 한인 대표자는 이승만·민찬호·정한경으로 한다. (3) 뉴욕 소약국민동맹회에 참여한 각 국민이 파리평화회의에 대표자를 파견하는 경우에는 한인 대표자 1명도 그들과 함께 파견한다. 이러한 결정에 따라 민찬호와 정한경이 제2차 동맹회의에 참석했다. 하와이에 있던 이승만은 그 회의가 끝난 후 대표단에 합류하여 파리평화회의에의 출석을 도모하지만, 미국 정부의 비자 발급 거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한편, 뉴욕의 신한회(The New Korea Association, 회장 申聲求)라는 단체 또한 11월 30일에 총회를 개최하여 ‘독립결의서’를 채택한 뒤 미국 국무부와 하원 외교위원장에게 수교하는 동시에 김헌식(金憲植)을 제2차 동맹회의에 출석시켰다. 이 회의에는 한국을 비롯하여 레토니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알바니아, 앗시리아, 그리이스, 인도, 아일랜드, 페르시아, 스코틀랜드, 우쿠라이나, 트란스발의 대표들이 참석했는데, 김헌식이 집행위원회의 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들은 파리강화회의에 대하여 민족자결을 주장했으며, 장차 설립된 국제연맹에도 정회원으로 가입되어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선포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재미한인(在美韓人)의 독립운동(獨立運動)』(방선주,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1989)
- 「3·1독립운동 발발(勃發)의 경위(經緯)」(신용하, 『한국근대사론』Ⅱ, 지식산업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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