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4년(중종 29)~1614년(광해군 6). 무쇠 장인을 업으로 하였다. 이준(李埈)의 요청에 따라 효행으로 정려(旌閭)가 하사되었다.
배순(裵純)은 무쇠 장인을 업으로 하였는데, 제작한 그릇이 비뚤어지거나 흠이 있으면 시장에 내놓지 않았으며, 만약 이를 사는 자가 있으면 염가로 판매하였다. 젊어서는 경상도 예안에서 거주하였는데, 이때 인근의 이황(李滉)을 마음속으로 흠모하였다. 만년에 풍기로 이사하여 작업장을 죽계(竹溪) 상류 평장동(平章洞)에 두었다.
풍기로 이사한 뒤 이황의 부음을 접하고는 심상(心喪) 3년을 지냈을 뿐 아니라, 이황의 철상(鐵像)을 만들어 제사지냈다. 74살 때인 1608년(선조 41) 국왕이 승하하자 3년상을 입었다. 사망 직후 풍기군수 이준의 요청에 의해 정려가 하사되었다.
풍기군수를 지낸 이준과 풍기 출신의 곽진(郭山+晉, 1568~1633)이 배순을 기려 찬술한 「배순전(裵純傳)」이 있다. 그의 정려비가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에 소재하며, 1993년 2월 25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