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계운궁 복제론은 1626년(인조 4) 인조의 생모인 계운궁이 사망하자 국왕의 상복을 둘러싸고 제기된 복제 논쟁이다. 계운궁의 상례에 인조가 복제를 기년복(1년)으로 할지, 삼년복으로 할지에 대한 논란이다. 생모에 대한 상례는 삼년상이지만 인조의 경우 왕통으로는 선조와 부자 관계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결국 계운궁에 대한 복제는 기년복으로 결정되었고 상주도 인조가 아닌 능원군으로 결정되었다. 다만 상례 절차 및 상구의 사용 등은 국장에 준하여 시행되었다. 이 논의는 현종대의 예송논쟁에 앞선 복제 논쟁으로 인조의 왕위 계승의 정통성 문제와 관련이 있다.
정의
1626년(인조 4) 인조의 생모인 계운궁이 사망하자, 국왕의 상복을 둘러싸고 제기된 복제(服制) 논쟁.
개설
역사적 배경
논란은 인조 즉위 직후, 대원군(大院君)으로 추숭된 정원군의 제사 때 제문의 두사(頭辭)에서 인조가 생부를 어떻게 칭할 것인가 하는데서 시작되었다. 이때 김장생(金長生) 등 대다수는 왕위 승통을 우선시해서 인조가 정원군을 백숙부(伯叔父)로 칭해야 한다고 하였고, 박지계(朴知戒)는 정원군을 종통에 포함, 황고(皇考)라 칭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출하였다. 예조에서는 양측의 견해를 절충하여 ‘칭고칭자(稱考稱子)’하자는 안을 제출하였다. 즉 ‘고(考)’라 칭하면서 ‘황(皇)’자를 덧붙이지 않고 ‘자(子)’라 칭하면서 ‘효(孝)’자를 덧붙이지 않는다면 종통과 사친 모두에게 극진한 도리가 된다는 논리였다. 결국 예조의 안이 받아들여져 시행되었으나, 향후에도 논란이 될 소지를 안고 있었고, 1626년(인조 4) 계운궁 복제 논쟁은 그 중 하나였다.
경과
계운궁이 사망하기 직전 삼정승인 이원익(李元翼) · 윤방(尹昉) · 신흠(申欽) 등이 논의를 주도하여 삼년복에서 강복(降服)하여 부장기(不杖期)로 정하였다. 이 논의는 앞서 즉위 초 김장생이 제기했던 논점을 따른 것이었다. 인조가 혈연적으로는 선조와 조(祖)-손(孫)의 관계이지만 왕통으로 본다면 부(父)-자(子)의 관계가 되므로 사친에 대해서는 강등하여 기년복을 입어야 하고 당연히 상주가 될 수 없으므로 지팡이를 짚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조 역시 초기에는 이들의 의견에 동조하였다. 그러나 최명길(崔鳴吉)과 이귀(李貴) 등이 이원익 등의 논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 왕통을 계승했다는 이유로 생부의 상복을 낮출 수는 없다고 하여 삼년복을 주장하였다. 또한 앞서 대원군을 ‘고’라 칭할 때 동의했던 대신들이 계운궁 복제에서는 입장을 바꾸었다고 비난하였다. 최명길 등의 주장에 힘입어 인조 역시 이에 동조하면서 삼년상은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것이라고 하며, 왕통을 계승한 뒤에도 부모라고 불렀으니 삼년상을 거행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 논의에서는 기년복이 대세를 이루자 인조 역시 입장을 선회하여 기년복으로 하고 장기(杖期)로 하겠다고 하였다. 자신이 상주가 되어 집례를 하겠다는 의도로, 상주의 결정 여하에 따라 상례(喪禮)의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예조와 대신 등은 의안군(義安君)에게 출계한 능원군(綾原君)을 파계귀종(罷繼歸宗: 양자 관계를 파하여 다시 원래의 친가로 돌려보내는 것)시켜 상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인조는 자신이 선조에게 출계한 것이 아니고 능원군을 파계귀종시킬 수 없다며 자신의 의도를 강하게 주장하였다. 그러나 예조 등의 의견을 꺾지 못했다.
결과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조선후기 왕위계승 연구』(이영춘, 집문당, 1998)
- 「17세기 전반 계운궁 복제론: 김장생·박지계의 예론을 중심으로」(이현진, 『한국사론』49,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2003)
- 「인조초 복제논의에 대한 소고」(서인한, 『북악사론』1,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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