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극중(權克中, 1621년~?)의 자는 정숙(正叔)이고,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할아버지는 권택(權澤)이고, 아버지는 무과(武科) 출신의 권시형(權始衡)이다. 부인은 진안(鎭安) 장씨(張氏) 장천익(張天翼)의 딸이다.
1644년(인조 22) 정시(庭試) 무과에 급제하였다. 1653년(효종 4) 3월 대정 현감에 제수된 뒤, 1655년(효종 6) 9월까지 재직하였다. 이후 1662년(현종 3) 무겸선전관(武兼宣傳官), 1668년(현종 9) 도총부 경력에 제수되었고, 경력에 재직할 때에는 평안도(平安道) 점마별감(點馬別監)으로 파견되기도 하였으며, 국왕의 온양 거둥 때에는 호위 군사로 참여하였다. 1670년(현종 11) 남포 현감에 제수되었고, 1673년(현종 14)에는 부호군에 제수되었다. 숙종 연간에는 평해 군수(平海郡守)와 곡산 부사(谷山府使), 삼척 영장(三陟營將) 등을 역임하였다.
제주의 대정 현감에 재직하던 때인 1653년(효종 4) 8월에는 제주 목사 이원진(李元鎭)의 명을 받고 섬에 표류한 하멜을 처음으로 만나 조사한 내용을 보고하기도 하였다. 남포 현감 재직하던 1673년(현종 14)에는 전국적으로 도적이 횡행하였는데, 이때 도적을 체포한 공로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에는 처족(妻族)의 운구에 관노(官奴)와 사령(使令) 등을 동원한 것이 농번기에 일반 백성을 동원한 것으로 잘못 와전되어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권극중의 탄핵에 참여했던 사헌부 관원 중 한 명인 장령 유연(柳㝚)은 사실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고 탄핵했다고 하여 체직(遞職)을 요청한 바 있다.
『안동권씨당종세보(安東權氏唐宗世譜)』에 따르면, 묘소는 개성의 남면 신리에 위치하였다. 이곳은 아버지 권시형의 묘소가 있는 지역이기도 한데, 권시형이 개성부 경력에 재직하는 과정에서 확보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