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충청도 도관찰사를 역임한 제정공(齊靖公) 신효창(申孝昌)이다. 부인은 안동 권씨이고, 양녕대군(讓寧大君)의 아들인 순성군(順城君)의 장인이다.
군자감 직장(直長)을 비롯해 1431년(세종 13)에는 사헌부 감찰을 지냈고, 이후 예빈시윤(禮賓寺尹)과 인수부 소윤(仁壽府少尹) 등을 지냈다. 1451년(문종 1)에는 호군을 지냈다. 호군에 재직할 때는 충청도 목천(木川)의 시골 농장에 불교 사찰을 짓고 그곳에서 기와 굽는 것을 보기 위해 병을 칭하며 목욕을 청하였다고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된 바 있다.
묘소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오곡리 산 58에 위치해있다. 신익황(申益愰, 1672~1722)의 기록에 따르면, 신자경의 묘는 17세기 전반까지 실전(失傳)된 상태였다고 한다. 이러던 중 인근의 갈전리(葛田里)에 이미 서인(庶人)이 된 그의 후손 신명후(申明厚) 등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마침 신명후의 사위로 문자 해독이 가능한 오일만(吳一萬)이 우연히 묘 앞에 세워진 묘갈(墓碣)을 판독한 뒤에야 신자경의 묘소인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시기는 17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된다.
무덤이 확인된 후 신익황의 숙부인 신명전(申命全)이 1690년(숙종 16) 청주영장이 되어서 가봉(加封)과 치제하였고, 이어 신익황의 백형인 신익념(申益恬)이 병사(兵使)가 되어서는 신익황과 함께 1694년(숙종 20)에 묘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당시 인근에서는 권의암(權義庵)이라는 재실의 흔적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신자경의 묘는 1988년 8월 30일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