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김면의 휘하에서 참모로 활동하였으며, 장수현감, 광흥창주부, 개령현감, 운봉현감 등을 역임한 관리·의병.
개설
증조부는 사간을 지낸 윤경(尹耕)이고, 조부는 회령판관을 지낸 윤삼빙(尹三聘)이며, 아버지는 윤은신(尹殷臣)이다. 어머니는 전주 이씨 이효원(李孝元)의 딸로 효령대군의 현손녀이다. 부인은 전주 이씨 이몽룡(李夢龍)의 딸로, 완원군(完原君)의 증손녀이다. 12살 때 문산두(文山斗)에게 나아가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문산두는 윤경남이 평생 교유한 문위(文緯)의 아버지이다. 경사(經史)에 침잠(沈潛)하는 한편 문위를 비롯해 정온(鄭蘊) · 곽준(郭䞭) · 유중룡(柳仲龍) 등과 교류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문위와 함께 산척(山尺) 등을 모집하였고, 이어 전 좌랑 김면이 기의(起義)하자 여기에 참여하여 참모로 활동하였다. 고령에서 왜구와 교전을 통해 80여 급(級)을 참수하고 선박 2척을 포획하여 초유사(招諭使) 김성일에게 보냈다. 이어 사두관동(沙豆館洞)의 사암(沙巖)과 단성 벽계진(碧溪津)에서 왜구와 교전해서 다수의 왜구를 참수하거나 포획하는 등의 공을 세웠다. 김면의 사후에는 그에 대한 만장(挽章)을 찬술하기도 하였다. 1609년(광해군 1) 개령현감에 제수되어서는 「민막소(民瘼疏)」를 올려 민폐 시정에 노력하였다.
상훈과 추모
경상남도 거창박물관에 소장된 상아홀(象牙笏)이나 팔각전통(八角箭筒) 등이 1997년 1월 30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같은 날에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에 소재한 그의 생가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감수재집(感樹齋集)』
- 『난중잡록(亂中雜錄)』
- 『모계집(茅谿集)』
- 『서산집(西山集)』
- 『송암유고(松菴遺稿)』
- 『후산집(后山集)』
- 한국고전종합DB(//db.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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