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조각상은 단발머리 소녀가 양손으로 피리를 비스듬히 잡고 피리를 부는 모습의 누드 인물상이다. 윤승욱(尹承旭)이 1941년 제2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특선을 수상했던 작품으로, 사실적인 누드 인물상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근대기 조각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근대 조각가들이 많이 사용했던 석고로 제작되었고, 조각상의 표면은 녹색조로 채색되어 있다. 오른쪽 다리에 무게중심을 실어 몸체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인체 표현은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 자세를 수용한 것이다. 양식적으로는 서양 고대미술의 전통을 수용했지만, 피리를 부는 모습은 목가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피리 부는 인물은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음악」(1910) 같은 작품에서도 등장하지만, 윤승욱의 「피리 부는 소녀」는 한국 근현대 회화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향토색 혹은 목가적 표현과 관련이 있다. 이런 주제가 회화가 아닌 조각으로 표현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조각가 윤승욱은 1934년에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조각과에 입학하여 1939년에 졸업했으며, 1938년 제17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한일(閑日)」로 입선한 이후 지속적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했으나 현존 작품은 거의 없다.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각과 교수로 부임했으나 6∙25전쟁이 발발한 직후 좌악 계열에 잡혀간 뒤 행방불명되었다.
「피리 부는 소녀」는 근대기에 제작된 등신대의 석고 인물상으로, 윤승욱의 작품으로는 유일한 현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김복진을 비롯해서 근대기에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한 조각가들은 인체누드 조각상을 다수 제작했지만, 석고라는 재료의 한계로 인해 대부분 파손되었다. 이 작품 역시 파손되었는데, 현존하는 작품은 조각가 최의순이 흑백사진을 토대로 복원해 놓은 것이다. 이 석고상은 1971년에 청동으로도 주조되었기 때문에 석고상 1점 이외에 청동상이 현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