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북한 황해남도 배천군에 있는 고려전기 도기와 청자를 굽던 가마터.
개설
내용
3기의 청자 가마는 모두 벽돌로 제작된 벽돌가마이면서, 단실(單室) 구조의 등요(登窯)이다. 고려청자 가마에서 벽돌이 사용된 전축요(塼築窯)는 고려 초기에만 보이다가 흙가마인 토축요로 변화한다. 고려 초기에 중국 절강성(浙江省) 월주(越州) 지역으로부터 청자 제작 기술을 수용할 때에는 중국식의 전축요를 지었지만 이후에 고려의 상황에 맞게 발전하면서 토축요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벽돌가마는 원산리 청자가마와 함께 시흥 방산동 가마터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외에도 용인 서리 가마터에서는 토축요의 아래 층위에서 전축요가 확인되어, 전축요에서 토축요로 변화하였음이 확인된 유적이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도자기가마터 발굴보고』(김영진, 백산자료원, 2003)
- 「한국 초기청자의 형성과 전파-전축요와 토축요를 중심으로」(이종민, 『미술사학연구』240, 한국미술사학회, 2003)
- 「한국 초기청자에 있어서 해무리굽완 문제의 재검토-한국 청자 제작의 개시시기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이희관, 『미술사학연구』237, 한국미술사학회, 2003)
- 「시흥 방산대요의 생산집단과 개시시기 문제-방산대요 출토 명문자료의 검토」(이희관, 『신라문화제학술논문집』23,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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