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유채. 세로 162㎝, 가로 129㎝. 국회도서관 소장. 김인승의 「화실」은 1937년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이다. 스케치하는 남자와 옆에 나란히 앉아 쳐다보는 여성을 클로즈업하여 그린 것이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남자는 김인승 자신이며 옆의 여인은 모델로서 일본의 화실에서 그려진 작품이라고 알려졌다.
아카데믹한 사실주의 화풍의 대표자라 알려진 김인승은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졸업반 시절인 1936년 일본의 제국미술전람회에 「나부(裸婦)」를 출품하여 입선하면서 화가로서의 기량을 일찍부터 인정받기 시작했다. 1937년 봄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한 직후 5월에 개최되는 조선미술전람회에 그는 「나부」, 「화실」, 「흑의의 여인[黑衣女]」 총 3점을 출품하였다. 이 작품들 중 「나부」는 특선(창덕궁상)을 받고 「화실」은 「흑의의 여인」과 함께 입선을 하였다. 당시 그의 본가(本家)가 있던 개성에서 유지들이 모여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하고 금의환향한 그의 환영회를 열 정도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미전특선화가 김인승군 축하회」, 『조선일보』, 1937.5.21.)
「화실」은 스케치하는 남자와 옆에 나란히 앉아 쳐다보는 여성을 클로즈업하여 그린 것이다. 화면 좌측 상단에는 ‘In Soong Kim 1937’이라고 붉은색으로 쓰여 있다. 소파에 앉은 두 인물을 대각선으로 배치하여 화면의 깊이감을 조성하고 있으며 여인의 뒤쪽에 놓여진 핑크색 담요와 화가의 등 뒤에 놓여진 붉은색 쿠션이 이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는 동시에 좌우 균형을 이루어 화면의 안정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스케치북과 슬리퍼의 윤곽선을 흰색선으로 빠르게 처리한 데에서 숙련된 데생력이 돋보인다.
이 작품에 대해 당시 서양화부 심사위원을 맡았던 도쿄미술학교 교수 타나베 이타루(田邊至)는 “전체적으로 큰 대를 잘 붙들었다. 인물화로서의 의미도 잘 살아났다. 꽤 우수한 기술이 있는 사람이다”라는 평을 했으며 심형구 역시 “자유로운 필치와 흥미있는 구도로 그의 역작 중 하나”라 평하였다. 대상의 충실한 묘사와 안정된 화면구성, 서구적 미를 가진 여인상 등 도쿄미술학교와 일본 제국미술전람회의 관전형 양식을 따른 1930년대 김인승의 전형화된 화풍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