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미국 할리우드의 직배시장이 국내에 개방되자 이에 따른 국내 영화제작 산업의 위기가 고조되었다. 이에 1990년대 초 젊은 영화제작자들을 중심으로 철저한 시장성과 사회문화적인 트랜드 분석에 맞춰 계획된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 국내 기획영화의 시초가 되었다. 이처럼 1990년대 시작된 새로운 변화의 중심에는 신씨네, 명필름, 우노필름, 시네마서비스 등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획개발 역량이 탁월한 신생제작사들이 있었다. 특히 국내 기획영화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게 된 1992년 개봉작 「결혼이야기」의 성공으로 철저한 기획을 통해 영화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새롭게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제작으로 자본 유입이 시작되면서 한국영화산업은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였다.
기획영화를 통해 국내 영화제작 시스템은 현장 중심의 감독체제에서 사전 계획에 의한 기획자 주도체제로 변화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따라 제작과 기획이 자연스럽게 분리되었고, 이를 통해 프로듀서 시스템이라는 새로운 영화제작 환경이 조성되었다. 따라서 기획영화에 있어서 기획자의 의미는 기존의 관리적 측면에서의 제작자가 아닌, 관객 성향에 따른 소재를 전문적으로 개발해 내는 프로듀서로서의 의미로 대체된 것이다.
1990년대 기획영화의 등장 이후 지속적으로 등장한 젊은 세대의 영화 전문인력은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있던 국내 영화산업에 큰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며, 영화제작 현장 전반에 걸쳐 전문화, 분업화된 체계를 확립하는 데에 중요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를 토대로 영화제작 투자가 더욱 더 활성화되기 시작하였고, 장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소개되면서 양적, 질적 발전을 모두 이루어냈다.